"제가 저지른 일에 전혀 죄책감 같은건 없어요."
희대의 살인마라고 기억되고있는 정남규는 심문과정에서 모두를 질색하게
만들었다.
그는 유족들과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끌려가는 그는 고개를 당당히 들고 자신을 공격하고 욕하는 사람들을 노려보며
발로 차려는 행위도 서슴치않았다.
아 정말 인간이 아니구나싶은 그의 이름은 정남규였다.
정남규의 불우한 어린시절은 꽤 유명하다.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끔찍한 학대를 당했고 동네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청소년기에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1969년에 그는 전라북도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까지
다녔으며 공장을 다니며 잠시간 직장 생활을 했다.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는 탓에 일은 금방 그만두고 또 다른 일자리를 찾곤했다.
영장을 받은 그는 군대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괴롭힘이 끊이지 않았다.
가혹한 행위들이 연달아 일어났고 그는 점점 어둠에 좀먹어 들어갔다.
제대한 그는 범죄에 눈을 돌리게되는데 강도 혹은 절도등을 저지르고
성폭력까지 범죄의 경력을 넓힌다.
2004년 1월 30일 그는 구로구의 한 빌라에 침입하여 집 주인을 찔렀지만
피해자는 살아 남았다.
잠시간 잠잠하던 그는 2월6일 이문동 어느 길에서 한 여성을 잔혹하게 칼로
찔러 살해하였다.
그녀는 의류점에서 퇴근하는 길에 참변을 당했다.
그러나 이사건은 별다른 증거가 없어 뭍히는듯 지나가고만다.
그런데 같은 시기 활동했던 또 다른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나중에 체포되어
이문동 살인사건을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이라 주장했다.
그로부터 사일후 동네를 옮겨 군포시 산본동에서 새벽시간 우유배달을하던
여성을 칼로 찔러 살해한다.
정남규는 자신을 똑똑하다 생각하며 스스로를 굉장히 높이 샀다.
그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위해 신발 밑창을 갈아서 무늬를 없앴다.
참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인게 그는 피해자들의 뒤를 조심히 따라가 그냥
공격한것이 아니라 꼭 돌려세웠다고한다.
"그게 더 재밌잖아요"
그 이유는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보고싶어서였다.
2월13일 새벽시간 신길동에 길에서 여성이 칼에 찔려 사망한다.
25일 주택에 침입하여 주인 여성을 찔렀지만 살아 남았다.
바로 다음 날 그는 여고생을 살해했으며 4월 8일 집으로 돌아가던 여성을
해하려했지만 여성은 살아 남는다.
22일 여대생을 집 앞에서 살해,5월9일 보라매공원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던
여대생을 살해했다.
길거리에서 이렇게 살인사건이 일어나니 언론에서는 이 사건들을 다루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는 머리를 쓴건지 아니면 이유없이 그런건지 무기를 바꾸며
범죄 방법을 바꾼다.
이전에는 칼을 사용했다면
도구를 바꿔 파이프렌치를 들고 집에 침입을하는데 그 중에 안방이 아닌 다른
방으로 먼저 들어간다.
안방 같은 경우는 남자(아니면) 어른들이 있다고 판단했고 손쉽게 제거할수있는
목표물은 작은 방에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인과 중상을 입혀가며 범행을 저지르던 정남규는 방심을 했는지
화를 다스르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른다.
2006년 4월 22일 영등포 신길동 주택에 침입해 금품을 훔치려고 했지만
그 방에있는거라곤 만원권 문화상품권등 돈되는 거라곤 없었고
자고있는 이십대 남성을 살해하려 무기를 휘두른다.
남성은 정남규에게 지지않고 방어하고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아들의
방으로 들어온 남성의 아버지와 합세해 그를 붙잡았다.
그렇게 그는 경찰의 손에 넘겨진게 된다.
그를 맡아 심문하던 프로파일러는 그에게 살인할 타깃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하냐는 질문을 했다.
"그럼 살인을 저질렀던 곳으로 다시 찾아가서 그때 일어났던 일들을
찬찬히 생각해요."
그말에 분명 살해한 무기인 칼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라 직감했고 다시
정남규의 집을 수색했다.
그리고 장롱 서랍 밑에서 칼을 발견한다.
체포되고 그의 태도에 유가족도 국민들도 모두 분노했다.
그가 살해한 여성들중 어린 자녀를 홀러 키우던 여성이
살해되며 분노는 더 커졌다.
차안에서 웃어대는 모습을 보이거나 유족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고수했다.
유영철이 여성에게 분노를 일으켜 범행을 저질렀다면 정남규는 성적인
이유에서 쾌락을 위해서 살인을 저질렀다.
재판을 받는 동안 그는 살인을 할 수 없어 너무 우울하다는 똥같은 말을
입으로 뱉었다.
"부자를 죽이지 못해 억울해 죽겠어"
말로는 부유층을 살해하려고했으나 씨씨티비가 많다는 이유로 하루 하루
살기 팍팍한 사람들을 노려 손쉽게 살인을 저질렀다.
유영철이 개를 살해하며 연습을 했다면 정남규는 체력을 위해 운동을
꾸준히 했다.
정말 오로지 살인을 위한 삶을 살기로 한 것인지 몸에 좋지 않을 것은
하지 않았고 음식까지 챙기며 몸을 신경썼다.
또 대상을 물색하며 지역을 돌아다니기엔 파이프렌치가 커다랗다보니
어느 집에 숨겨두었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유영철은방법을 진화시켜 없어져도 모를 사람들을 골라내는 방법을 택했고
증거를 남기지 않을 방법들을 고안했다.
정남규는 무기를 바꾼다
그러나 유영철에 비하면 뒷처리가 그다지 깔끔한 편은 아니었다고한다.
과학수사 관련 잡지나 드라마등으로 사전 지식을 키웠다.
어떻게하면 체포되지 않을지 증거를 남기지 않을지에대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의 집을 수색하던 경찰들은 정남규가 자신의 기사를 스크랩한 스크랩북을 찾았고
그곳엔 프로파일러의 사진까지 따로 스크랩되어 있었다.
"내가 죽였는데 제가 지금 뭐래?"
정남규는 심문을 받으며 묻지도 않았던 이문동 살인사건에대해 유영철이 아닌
자신이 저지른 것이라고 털어 놓았고 부천 초등생 살인 사건 역시 자신이
저질렀다 고백한다.
그는 최종적으로 사형이 내려진다.
정남규는 그 사이에도 살인에 대한 집착을 끊임없이 보였다
2009년11월21일 그는 자살시도를하고 병원으로 이송되지만 다음날
사망하고 만다.
그가 사형에대한 두려움때문에 자살을했다는 말이 많았지만 더이상
살인을 저지르지 못하기때문에 자살을 택한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정남규가 판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담배는 끊었지만 살인은 못 끊겠다 괴롭다
라는 말을 적어 보냈다.
유영철도 정남규도 자기들딴엔 그럴싸한 이유들을 붙였다.
부자들을 살해하겠다는 마치 그게 목표고 동기라는듯 말했지만 결론
적으로 두 사람은 자신들이 쉽게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을 골라 타깃으로
삼았다.
그들의 어린 시절엔 동정을 해줄순있으나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을 살해하며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행위는 용납 될 수 없다.
그들은 비겁한 이들이며 그저 광기에 절은 살인을 즐긴 악마보다 못한
이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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