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에서 사람들이 만든 옷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1991년 소련이 붕괴했을 때 마을의 운 좋은 주민중 몇몇은 차고를 소유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었고 그 중 한명으로 알렉산더 코민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 부품이나 농장 장비 및 감자를 보관하기 위해
금속 판을 사용 합니다.
그러나 44세의 코민은 전기 기술을 살려 그 물품들을 사용해 자신의
성노예들을 위한 지하 벙커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12미터 좀 넘는 곳까지 땅을 파내려 갔고 100평의 공간을 만듭니다.
그가 처음부터 성노예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코민은 노예를 잡아들여 자신을 위해 채소를 키울 온실을 만들려고 했지만
알렉산더 미케예프를 만나고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둘은 계획에 대해 논의를 하고 옷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4년 동안 이 두명은 교대로 지하 벙커를 파냈습니다.
몇 개의 방 , 전기 , 환기및 엘리베이터가 구비 된 지하 벙커가 1995년
준비가 됩니다.
그의 꿈의 공간은 두개의 작고 비좁은 습기 찬 더러운 방들이었으며
하나는 3개의 침대와 또 다른 방은 TV와 3대의 재봉틀을 구비해 둡니다.
그리고 손으로 수 놓은 십자가 및 여러 작품들을 벽에 걸어 두었습니다.
희생자들은 침대 옆 벽에 마돈나나 아이의 사진 해리슨 포드 등의
사진을 붙여 두었다고 합니다.
코민이 붙인 그림중에 악마가 있는 그림으로 그 악마는 채찍을 들고
자신의 하렘에서 여성을 때리는 그림 이었는데 그가 가장 좋아하던
그림이었습니다.
그리고 설치한 3대의 재봉틀로 만든 속옷과 옷 등을 만들어
근처 벼룩시장에 나가 판매 했습니다.
첫 번째 피해자는 이웃 사람 베라 톨 파예바 였는데 그녀는 코민의
지인 타티아나와 그녀의 남자 친구 니콜라이를 코민의 벙커로 유인하는
것을 돕습니다.
니콜라이는 독살 됐고 베라는 부동액을 마시거나 정맥에 주사 하도록
강요 받게 됐고 강요에 의한 자살을 하게 됩니다.
타티아나는 코민이 제안하는 직업에대해 받아 들였지만 백혈병과 직장
윤리가 없는 것으로 느껴지자 그녀 역시 부동액에 의해 살해 됐습니다.
코민은 벙커의 확장을 위해 전직 낙하산 부대원인 예브게니 시쇼프 를
고용 합니다.
그리고 코민은 낙하산병 이었던 사람과 자신의 사업을 공유하는 것은
자신에게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를 살해 했습니다.
경찰은 처음에 주변에서 발견되는 시신들이 러시아의 지방에서
흔한 사인인 알콜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판단 합니다.
알렉산더 미케예프는 코민이 누군가를 살해 할 당시 함께 하지 않았지만
고문을 목격하거나 시신을 처리하는 것을 도왔다고 합니다.
코민은 피해자들의 이마에 노예라는 글을 적어
문신을 만들었으며 희생자들을 고무 호스로 때리거나 강간 했습니다.
그렇게 희생자중 2명은 2년 반 동안 감금되어 끔찍한 행각들을 견뎌야만
했다고 합니다.
1997년 코민은 마지막 살인을 저지릅니다.
지하벙커에 노예들을 가지고 있는 코민은 바깥 세상에서 이리나라는
여성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 결혼 하길 원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결혼을 결정하기까지 3개월 동안 그녀를 벙커에 가두어
둡니다.
그녀가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자 코민은 그녀를 위로 데리고 올라가
아파트로 데려다 주고 웨딩 드레스를 사러 갑니다.
그리고 그녀가 코민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녀는 그대로
경찰에게로 향합니다.
그렇게 체포 된 코민은 재판을 받게 됐고 25년 형을 선고 받게 됐습니다.
재판에서 그는 자리에 앉아 양심의 가책에 대해 표하지 않았고
"나는 이리나와 결혼하거나 지하 꿈을 이룰 기회를 얻지 못해 유감이다 "
라고 말했으며 자신은 희생자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실직자하거나 노숙자인 여성들어있고 나는 그들에게 살 곳과
꾸준한 일자리를 주었다" 라는 뻔뻔 스러운 말을 했습니다.
또
희생자들에게 구타와 문신이 필요하다고 느꼈는데 희생자가 도망쳤을때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느꼈고 처벌 이후 희생자들은 자신을 두려워
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코민은 작업장과 성노예들을 만들었던 벙커에 대한 미친 아이디어는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그러나 여전히 자신은
정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 합니다.
경찰이 수사할때 함께 했던 한 희생자는 벙커에 다시 갔을때
"나는 무너지지 않았어요 나는 울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2년동안 살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고 한 희생자는 국가의 도움을 받기 전
가난으로 인해 사망 했다고 합니다.
피해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그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마련 하는
경우는 처음 접하는 사례 갔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미친 아이디어라고 표현 하지만 자신은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는 알렉산더 코민 성노예 벙커 납치 감금 사건
이었습니다.
노래 - Gaia in F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