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호러 하우스

랫서팬더 모자 남성 사건

오키노 2018. 11. 2. 21:03


야마구치 마코토는 5인 가족의 장남으로 1972년 2월 삿포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래로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었으며 야마구치는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정도의 지적장애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는 날이면 장남 야마구치에게 폭력을 휘두르고는 

했습니다. 


중학교때까지는 별다른 이상 없이 친구들과 어울렸던듯 합니다. 

그는 집에 친구를 데려와 자신의 방에서 함께 음악을 들으며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교사는 그가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의 얌전한 아이라고 기억

합니다. 


1989년 야마구치가 17세 일때 가장 교감이 많았던 엄마가 병으로 인해 

사망 했습니다. 


엄마가 사망하고 가족은 삿포로 시내를 돌며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그들이 살았던 집에

다음으로 들어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집은 굉장히 더럽고 

야마구치의 방으로 추정되는 곳의 다다미 바닥에는 이소룡의 포스터가

벽은 발로 찬 것 같은 많은 흠집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1990년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페인트칠 일을 하지만 그다지 오래 

일하지 못하고 집을 가출해 음식점이나 공사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홋카이도와 도쿄에서 생활 했습니다. 

 

야마구치는 즉흥적인 성격이었던 것인지 자신이 생각한 장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돈을 챙겨  기차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돈을 전부 탕진하고 나면 근처 파출소로 향했습니다. 

그러면 파출소에서 집으로 돌아 갈 수 있도록 교통비를 지원해주며 

비용은 집으로 돌아갔을때  청구하겠다고 경찰이 말해 줬다고 합니다.

 

그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 집과 거리 생활을

반복했던듯 하며 그때마다 그런식으로 사용된 경비는 집에서 어쩔수없이

부담했던듯 합니다. 

(경찰에서 도와준다는 말은 본인의 말일뿐 사실인지는 모릅니다.)


1994년 야마구치는 하코다테 시내의 공원에서 한 여성에게 접근해 

장난감

총을 들이밀며 강제로 추행하고 돈을 빼앗는 사건을 일으켜 강제 추행과

강도 미수 혐의로 구속 수감 됐습니다. 

그는 징역 3년과 집행 유예 5년의 형을 받게 됩니다. 


2001년 2월 방황을 즐기던 그는  하코다테에서 팬더 모자를 구매 합니다.

 

그에 말에 따르면 자신은 어릴 때 고양이를 키웠고 동물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여하튼

같은 해 3월 그는 우에노 캡슐 호텔에서 숙박을 했었는데 호텔의

직원이 모자가 귀엽다고 칭찬하면 기쁜 표정으로 모자를 구경

시켜 주었습니다. 

그때 직원은 그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판단했으며 그 모자를 비웃어서는

안된다고 생각 합니다 .


그는 삿포로 시내에서 여전히 아버지와 여동생과  함께 생활

했지만 어느 시점을 맞아 상경을 결심 했습니다. 


4월 3일 그는 도쿄의 센소사 카미나리몬 가까이에 있는 인근 공원에서

상자를 가져와 노숙을 시작 합니다. 

야마구치의 품에는 식칼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다른 사람을 위협할 용도이기도 했습니다. 


4월 26일 과 27일 아사쿠사 카미나리몬 근처의 길에서 야마구치가 

50세 남성의 머리를 뒤에서 몇번이고 때리는 것을 한 여성이 목격

합니다. 


4월 29일 오후 2시가 되기 전 사건 현장에서 30m 떨어진 

공원의 벤치에 렛서 팬더 모자를 쓴 남성이 장시간 앉아 있었으며 

스미다 강을 바라보고있었는데 

주변 사람이 그에게 말을걸자 그는 조용히 일어나 떠났습니다. 


4월30일 오전 9시쯤 야마구치는 한 여성을 덮칩니다.


야마구치는 다리를 건너다 중앙에서 젊은 여성을 마주치게 됐고 

칼을 꺼내 공격을 시도하는데 여성은 소리지르며 들고 있던 우산으로

막아 냅니다. 

결국 야마구치는 도망쳤고 여성은 우산을 쓰고 있었기에 범인의 얼굴

이나렛서 팬더 모자를 쓰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었습니다. 


같은 날 오전 10시 40분 19세의 대학생 여성이 대회에 나가는

남자친구를 응원하기 위해 

대회장으로 향하던 도중 야마구치로부터 

공격을 받아 살해 당합니다. 

 

야마구치는 그녀를보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는데 인기척 때문인지 뒤돌아본 여성은 야마구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때문에 발끈한 야마구치는 여성을 골목으로 끌고가 목을 조르며 

쓰러트립니다. 

가지고 있던 식칼을 꺼내 그녀의 등 과 가슴 배 등을 이곳 저곳을 

수차례 찔러 결국 사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에 대해 야마구치는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껴졌으며

죽이고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진술 합니다. 


여성의 비명을 듣고 나온 주민이 현장에 도착을했을때 야마구치는 

이미 도주한 뒤였습니다. 

현장의 근처 공원 수풀 속에서 모자를 발견합니다.


모자는 밤에 발견 됐으며 중국제로 갈색에 흰색이 섞인 렛 서 팬더

의 얼굴로 보이는 모자 였습니다. 

모자가 발견된 근처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안경이 함께 

발견 됩니다. 


5월 1일 오후 칼은

공원의 수풀 속에서 광고 전단지 그리고 우산과 함께 있었습니다. 


야마구치는 도주 후 도내의 역 등에서 노숙을 하다 7일 jr 도쿄역

주변에서 작업을 하던 업자에게 말을 걸어 취직을 합니다. 

그는 한 건설 회사에서 현장에 파견되어 8일부터 코바야시라는 

가명으로 일을 시작 했습니다. 


그는 돈이 없어서 일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야마구치의 실수 

였습니다. 

회사 관계자가 몽타주와 닮은 남성임을 알아보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 입니다. 

야마구치는 당시 신문이나  TV 등을 접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몽타주가 

도는 것을 몰랐습니다 .


경찰은 야마구치를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다 10일 그를 체포 

합니다. 


렛서 팬더 모자를 쓴 살인범 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자극하기에 충분

했고 앞다투어 다루려 했지만 그에게 지적 장애가 있는 것이 알려지고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진술할 당시 야마구치는 모자는 하코다테시에서 구매한 것이며 

개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합니다. 

경찰이 그 모자를 쓴 이유에 대해 묻자 자신에게 굉장히 소중해 

매일 안고 잔다고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재판에서 판사는 피고가 전반적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다해도  책임 

능력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

합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아버지 대신 가정을 꾸리던 필리핀 국적의 어머니는

야마구치가 17세일때 백혈병으로 사망 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여동생이 대신 가정을 꾸려나가다 난치병에 걸려 결국 사망했다고 

합니다. 

남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여동생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가정을 맡고 있던 엄마는 사망했기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중학교 졸업을 한 뒤 가사를 맡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돈은 전부 아빠가 관리했기에 쥐꼬리만한 생활비가 소녀에게 

쥐어졌고 겨우 겨우 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남동생은 결국 집을 나가 나고야에서 혼자 살았으며 여동생과

아버지는 식품 가공 회사에서 일을 시작 합니다. 


그리고 최악의 비극이 여동생에게 시작되는데 18세가된 그녀에게

폐렴과 다발성 폐 종양이 생겼고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반년 후 오른쪽 허벅지에 이상이 있어 진찰을 받으니 

오른쪽 대퇴부 연부 육종이라는 병명을 진단 받았는데 이것은 

폐의 종양이 전이 된 것이 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2월 두통이 심해지더니 결국 쓰러지는데 뇌에 전이가 

되어 종양 적출 수술을 받게 됩니다. 

 8월 전이성 폐 종양을 진단 12월 감마 나이프 뇌종양 수술 

그 이후에도 병으로 인해 힘들어하다 결국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어린나이의 그녀는 대체 무슨 죄가 있길래 지옥같은 집을 책임지고 

수 많은 병까지 걸려야 했을까요. 


그녀는 병에 걸린 뒤에도 치료비는 물론 가족에게 생활비까지 지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며

 소지하고 있던 모자 ,코트 , 안경 , 칼, 우산등을 길에  버렸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이 나쁜 행동을 저질렀다는 자각이 분명 있었다고

생각 됩니다. 


굉장히 이기적인 소년은 가출을하며 집안에 금전적인 문제를 일으켰고

결국 그 책임은 부모가 아닌 어린 여동생이 짊어 졌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것이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버지의 보호가 좀 더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던 아사쿠사 팬더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