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 괴담을 만들어낸 인물
유이 세이 영 (씨 우이)
1960년대 태국의 어린아이들은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지 말거라
그렇지 않으면 유이의 유령이 너를 잡아 먹을 것이라는 경고를 듣고
자랐습니다.
어린아이를 공포에 떨게만들었던 괴담속의 인물은 이야기 속이 아닌
실제 태국에서 살던 가난한 중국 남성입니다.
유이 세이 영 그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고 그래서 그가 있던 곳에 함께
있던 아이들은 그의 뱃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옛날 옛날 그 언젠가의 월요일 오후 8세의 아이는 야채를 사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녁시간이 되어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아들을 찾기 위해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친구들과 아들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수색하던 그는 아들이 야채를
사러 갔던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했을때 야채장수는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에게 다가가 아들의 행방을 물어보려 했다가 기겁을하고 맙니다.
불구덩이에는 작은 다리가 타고 있었고 놀란 아버지는 서둘러 불을
끄는데 성공했고 그곳에서 반쯤 탄 아들의 시신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는 주체할수없는 분노로 친구들과 유이 세이 영을 때리며 경찰을
기다렸습니다.
1958년 전국의 신문에 사건이 실렸고 유이 세이 영은 경찰에 아이를
살해하고 심장과 간을 먹었다고 자백 합니다.
그는 아이가 왔을때 살해하고 몸을 닦아낸 뒤 간과 심장을 잘라 냈고
나중에 먹기 위해 부엌 찬장에 장기들을 보관 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다섯명의 아이를 더 살해했고 그들을 먹었다고 자백하며
특별한 힘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며 그는 태국에서 악명 높은 살인범으로
등극됐고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괴담 속의 주인공이된 것 입니다.
그는 1927년 항구도시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8세가된 그는 일본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징집 됩니다.
힘든 전투 중에 자신의 부대가 일본군에의해 포위 당했을때 그와 그의 부대는
살아 남기 위해 풀을 먹다 죽은 군인을 먹게 됐습니다.
당시 지휘관은 적군의 힘을 받기 위해 그들을 먹으라고 지휘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후 그는 다른 중국인들과 함께 태국으로 이민을 왔고
인력거를 몰며 힘겹게 살아가던
그 사이 6명이 넘는 아이들을 살해해 심장과 간을 먹었습니다.
54년에 그의 첫 번째 피해자 8세인 소녀가 공격을 받았고 가까스로
도망치는데 성공 합니다.
두번째 희생자는 그에게 잡히고 다음 날 철로 옆에 시신으로 발견
됐습니다.
소녀의 목은 무언가에 찔려 있었고 심장과 간이 사라진 상태 였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희생자들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렇게 살인 행각을 하다 결국 그는 덜미가 잡힌 것 입니다 .
경찰은 그가 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때문에 목격자들의 진술과
살인 방법의 동일함 그리고 통역을 통한 그의 자백으로 사건을
해결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떠한 이들은 그가 그저 태국어를 할줄 모르는 가난한 농부이며
그렇기에 광범위하게 돌아다니며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때문에 살인 사건으로 압박을 받고 있던 경찰의 희생양이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 그들의 판단 입니다.
유이 세이 영이 잡히며 그전에 아동 연쇄 살인범이라고 잡혔던 정육점
주인은 풀려 났습니다.
사실 경찰이 유이 세이 영과 정육점 주인을 공범으로 만들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기자가 유이 세이 영에게 왜 아이들을 먹이로 삼았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아이들은 유혹하기 쉽지만 자신이 어른을 잡아 먹으려 했다면
분명 반격을 당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 했습니다.
유이 세이 영은 사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어 괴담 속 뿐만 아니라
방콕에 있는 법의학 박물관에가면 포름알데히드로 보관 시킨 그의
미라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식인 살인마라고 불리웠던 신비로운 힘을 얻고자
아이들을 살해해 섭취한 유이 세이 영의 연쇄 살인 사건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