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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호러 하우스

대륙을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의 아들 찰스 린드버그 주니어의 납치 사건


미국에서 굉장히 유명했던 찰스 린드버그 주니어 유괴 사건이 있습니다. 

전 영상에서 한번 언급된 적이 있는데 궁금한 참에 찾아보다가 영상을

제작하게 됐습니다. 


1932년 미국의 온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던 사건이 일어 납니다 

세인트루이스의 파일럿의 린드버그의 아들인 린드버그 주니어가 자고있던

요람에서 유괴 됐습니다. 


찰스 린드버그는 유모에의해 저녁 7시 30분에 잠에 들었고 요람에 뉘이고

유모는 방 밖으로 나옵니다. 

그로부터 2시간 후 유모는 부엌에서 약간의 소리를 들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밤 10시가 됐을때 아빠는 아기를 확인하기 위해 요람을 

확인하는데 침대는 비어 있었습니다. 


당황한 아빠는 아이가 엄마나 유모와 함께 있는지 확인하러 다녔지만 

아기는 어디에도 없었고 창 밖에 부서진 사다리와 몸값이 적힌 쪽지를 

발견 합니다. 


아버지는 그 메모를 읽고 집 밖을 뛰어다니며 아이를 찾으려했지만 헛된

수고일뿐이었습니다. 

그는 경찰에 신고했고 3개월 동안 FBI와 함께 아이를 찾기 위해 노력 합니다. 


3개월 동안 범인들은 아이의 몸 값으로 엄청난 몸값을 요구 해왔고

용의자와 목격자등 수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했습니다. 


범인들은 2층 창문을 사다리로 타고 올라와 진흙 발자국을 증거로 남겼지만

그 발자국은 결코 조사되지 않습니다. 


더욱더 충격적인 것은 방송을 타고 사건 소식이 전해지자 그것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경찰이 아직 회수하지 않은 증거들을 훔쳐 가는 

사태가 벌어진 것 입니다.


아빠 린드버그는 1927년 대서양을 단독으로 횡단하며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탑니다. 

아마도 그렇기에 돈이 많다고 판단했을 범인들은 그들 부부에게 5만달러를

요구하는 메모를 남겨 두었습니다.  


많은 주목을 받던 사건이다보니 여러 사람들이 충고와 의견을 나누었고 

이 사건은 잘못된 단서들이 넘쳐 났습니다 .

그 유명한 알카포네 역시 정보를 제공을 하는 이에게 1만 달러를 주겠다며 

도움을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 밖에도 아이의 몸 값에 보태 달라며 돈을 보내는 이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납치되고 3일동안 별다른 증거가 수집되지 않았으며 범인들로부터

연락도 없었습니다. 


뉴저지 경찰은 아버지인 린드버그가 납치범들과 협상을 하길 바랬고

 부부는 아이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이들은 범인들을 향한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몸값을 지불하고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어떠한 

체포도 없을 것이며 모든 준비는 비밀로 하겠다고 NBC 라디오에서 

방송 했습니다. 


그리고 3월 5일 드디어 부부는 납치범들로 부터 연락을 받게 됩니다. 

브루클린에서 보낸 편지로 손으로 쓴 편지 였고 내용은 

경찰이 관여하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뉴욕 브롱스에 살고 있던 존 콘던 박사는 32년 3월8일 뉴스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에는 납치범들에게 린드버그가 제공한 몸값 외에 자신의 돈 1000달러를

주겠으며 어디로든 혼자서 돈을 건내줄 것이고 범인들의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편지가 방송에 나가고 다음 날 그의 집 우편함에 범인들로부터의

메모가 있었고 그곳엔 린드버그로부터 돈을 받고 지시를 기다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린드버그에게 알렸고 린드버그는 바로 콘던 박사의 집으로 가 

아이의 장난감을 건내줍니다.

그리고 돈이 준비 됐다는 쪽지를 그들에게 남길 수 있도록 허락 합니다. 


3월 12일 저녁 8시 30분 콘던 박사의 집 초인종을 누군가 눌렀고 그는 

콘던에게 편지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남자에 말에 따르면 갈색 코트를 입고 갈색 펠트 모자를 쓴 남자가 

이 집으로 편지를 배달해 달라며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편지에는 자신이 알려주는 장소로 차를 몰고 가면 그곳에 다음 지령이 적힌

메모가 있을 것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콘던은 차를 타고 이동했고 지령에따라 목적지에 도착 합니다.

도착한 곳은 묘지였고 그곳엔 한 남성이 코와 입에 손수건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콘던에게 자신의 메모를 받았냐고 독일 말투로 질문 합니다. 

콘던은 의문의 남성에게 아기를 돌려주기 전까진 돈을 줄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묘지 밖에서 또 다른 남성을 발견 합니다. 

그 남성은 뒤 돌아 도망쳤고 콘던은 그를 뒤쫓았습니다. 

쫓고 쫓기던 그들은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게 됐고 콘던은 그를 

달래며 아무도 그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독 입니다. 


그는 자신이 다칠까봐 두려워하며 아기가 죽으면 어떡하냐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죽으면 태워 버릴까? 라며 콘던에게 말했고 콘던은 아기가 

죽었는지 물었습니다. 


그 남성은 아기는 죽지 않았다며 아빠 린드버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 달라고 말하며 아기는 괜찮다고 재차 말 합니다. 

콘던이 아기가 어디있냐고 묻자 그는 아기가 배에 타고 있다고 아빠에게

말해달라고 대답 했습니다. 


콘던은 아기에게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지만 남자는 곤란해하며 너무 

오래 머물렀고 공모자가 화를 내고 떠날 것이라고 말하며 콘던에게 

아기 잠옷을 보내겠다고 약속 하고 그  자리를 떠납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콘던은 소포를 받았는데 아기가 납치당시 입고 있었던

잠옷이었습니다. 

린드버그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납치범들이 아이를 해칠까봐 걱정됐고 

어서 몸값을 지불하라고 요구 합니다. 


 3월31일 화요일 콘던은 대화를 나눴던 남성으로부터 토요일까지 몸값을

준비하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몸값의 준비를 돕던 국세청은 다른 지폐들이랑 구별이 갈 수 있도록 준비 

합니다. 


준비 된 돈은 콘던의 집으로 배달 됐고 토요일 저녁  그의 집 초인 종이 

울렸습니다.

밖에는 택시 운전사가 서있었는데 그는 쪽지를 건냅니다. 

그 쪽지엔 꽃집으로 가면 다른 쪽지가 남겨져 있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총을 가진 린드버그와 함께 콘던은 목적지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납치범과 만났고 그는 돈을 가져왔는지 물었습니다. 

콘던은 차에 돈이 있지만 아이를 돌려주기 전엔 돈을 건네주지 않겠다고 

그에게 말 합니다. 


납치범은 아이의 위치를 알려주는 봉투를 건냈고 콘던은 오만달러를 

그 남성에게 건냈습니다. 


콘던은 봉투를 린드버그에게 건냈고 안의 메모에는 엘리자베스 섬 근처에서

호르세넥 해변과 게이헤드 사이의 보트를 찾을 수 있을 것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보와는 다르게 그 배의 어디에서도 아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납치범들은 자취를 감춘 뒤였습니다. 


같은해 5월 12일 한 트럭 운전사가  작은 마을에 정차를 합니다. 

차에서 내린 그의 눈을 사로 잡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땅 밖으로

 튀어나온 작은 발과 작은 머리 였습니다. 

그것은 린드버그 주니어의 시신 이었습니다.

부검 결과에 의하면 린드버그 주니어는 머리에 타격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납치될 당시 사다리 아래로 추락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추측 됩니다.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고 경찰은 다시한번 린드버그 집의 가정부중 한명에게

집중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그녀가 전에 이루어졌던 인터뷰에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정부는 3월 1일 밤 브링커트라는 남성과 데이트를 했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그녀가 받은 그의 명함은 그가 용의자로 의심되게 

만들었지만 사건 당일날 밤의 알리바이가 있었고 필체 또한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가정부는 인터뷰를 한 다음 날 아기의 사망등의 이유로 자살을 택합니다. 


사건은 해결되는 것은 없었지만 몇 년 동안 이어 졌습니다. 

 메모를 위주로 조사가 진행 됐다가 시간이 흐르며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으로 점점 집중 됩니다. 


1933년 11월 27일 전에 콘던과 벤치에서 대화를 나눴던 남성과 닮은 

남성의 목격이 제보가 됐습니다. 


10개월 후 브롱스에 있는 은행의 지점장이 4U-13-4-N.Y 라고 적힌 

금색 증권를 정말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동차 번호를 적어둔 거라고 추정 됐습니다. 

 그리고 그 돈이 한 주유소 직원으로부터 온 것을 확인했고 그의 기억으로 

그 돈은 독일 억양을 쓰는 파란색 닷지를 모는 남성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증언을 얻어 냅니다. 

이 금색 증권은 국세청에서 나중에 범인들을 잡기위해 발부했던 것이 

었습니다. 


뉴욕 자동차 협회는 메모에 적혀 있는 번호를 추적하여 차 주가 브롱크스에

살고 있는 35세의 목수 리차드 하우프만 인것을 알아 냅니다. 


경찰은 그를 체포했고 그가 소지하고 있던 20달러짜리 금색 증권을 

추가로 찾아 냈습니다. 

경찰은 그의 차고를 뒤져 숨겨진 1830달러를 발견 했으며 차고의 또 다른 

부분에서 11930달러를 추가로 찾아 냅니다. 


경찰은 드디어 범인을 체포 했다고 기대 했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리차드는 뜻 밖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이 돈은 자신의 친구인 이시돌 피시가 사망을 하며 남겨 놓은

짐에서  금색 증권을 발견했고 이것을 가족에게까지 숨기며 자신이 

사용하기로 했다는 것 입니다. 


몇 주간 그를 조사하며 그의 다락방의 아기 옷장의 문 에서 자필로 

쓰여진 얼룩진 전화 번호를 발견 했는데 그것은 콘던 박사의 전화 

번호 였습니다. 

리차드는 린드버그 가족들로 부터 5만 달러를 갈취한 혐의로 기소 되어 

10만 달러의 보석금이 걸립니다. 

2주후 23명의 배심원들은 그가 찰스 린드버그 주니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는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 했습니다. 


재판날 수백명의 언론이 모여 들었고 유명 인사들 역시 참여 했으며 

법원 앞에서는 현대 말로 굿즈를 판매 합니다. 

찰스 린드버그를 납치 했을때 사용한 사다리의 미니어처 라던가 

찰스 린드버그의 사진을 말입니다.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검찰측은 리차드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 올때 사다리가 부러졌고 그때 

아이가 떨어져 즉사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린드버그는 몸 값을 지불할 당시 들었던 범인의 목소리가 

리차드의 목소리가 분명하다고 증언 합니다. 


이것에대해 리차드의 변호사가 변론을 시작 했습니다. 

린드버그는 이웃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으며 그의 하인들은 제대로 

조사 된 사람들이 아닌 상태로 고용 됐고 그의 개가 그날 밤 짖지 않은

이유는 그것은 내부인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 합니다. 


가장 중요한 목격자인 콘던 역시 그가 벤치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데 체격이나 몸의 근육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차저차 이 재판은 배심원들이 리차드의 1급 살인에 대한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고 사형이 내려지며 길고 긴 재판이 끝나게 됩니다. 


참 여러가지로 찜찜함이 가득하던 재판이었습니다. 

재판에 나와 증언했던 경찰은 진흙발자국의 사이즈와 족적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조차 제대로 증언하지 못했고 너무나 많은 언론의 주목으로 

인해 마치 소 몰이를 하듯 스르륵 뚝딱 진행된 점도 분명 있다는 것 입니다. 


이후에 그의 항소는 기각됐으며 그의 변호사들이 형량을 낮춰달라는

요청 역시 거부 됐습니다. 


1936년 4월 3일 무죄를 주장하던 그는 뉴저지 주립 교도소에서 

전기 의자에 앉아 처형 됩니다. 


어떤이들은 리차드가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말 했습니다. 


그러며 또 다른 추측이 떠돌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아기 아빠 

찰스 린드버그가 아이를 살해 했고 사실을 감추기 위해 납치범들이라는

또 다른 인물들을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린드버그가 범인들을 알고 있지만 두려워 입을 열지 못한다는 

이야기 역시 돌았습니다. 


린드버그는 납치 사건 이후에 아이를 한명 더 낳았지만  그가 죽을때까지

이 사건에대해 어느 것도 아이에게 이야기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재판에서 공범에 대한 의혹이 있었지만 결론 적으로 리차드만이 벌을 

받고 사형에 처해 졌습니다. 

이 사건은 종결 됐지만 논란이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끝나지 않는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수 많은 언론에 관심과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 

찰스 린드버그 주니어 유괴 사건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