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예타노 산토스 고디노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 났는데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였고 아이들을 학대 했습니다.
고디노는 장염으로 여러번 죽을 뻔도 했는데 이것은 그를 병약하게 만들
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병약한 아이에게 술에 취한 아버지는 온 가족을 마치 샌드백 마냥
폭행을 가했고 이 후에 의사가 그의 머리를 검사 했을때 27개의 흉터를
발견 했습니다.
형과 아버지에대한 폭력 영양 실조 그리고 병약한 몸으로 인해서 인지
그의 모습은 남달랐는데 나이에 비해 키가 아주 작고 팔이 매우 긴편이며
귀가 상당히 컸습니다.
그는 페티소 오레주도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페티소는 아르헨티나
말로 작은 을 의미하며 오레주도는 돌출 된 큰 귀 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는 다섯살에 학교를 들어가지만 총 6개의 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그의 반항적인 행동에 학교들은 그를 쫓아 냈습니다.
고디노의 반항적인 태도 탓 도 있겠지만 그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누구도
그에게 글을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많은 시간은 할 일 없이 무언가 나쁜것을 저지르기 위해 돌아 다니는
것에 쓰였고 글도 모르는 바보 라고 인식이 되어 있는 고디노를 어른들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린아이들이 자신을 믿게 하는 것 역시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1904년 9월 28일 일곱살 고디노는 두살인 미겔에게 사탕을 줄 것을
약속 하고 그를 데리고 나뭇가지들이 가득한 곳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고디노는 미겔을 때리고 도랑에 던졌는데 근처에 있던 경찰이
미겔의 울부 짖는 소리를 듣고 이것을 보고 아이들을 경찰서로 데리고
갔습니다 .
그뿐이었습니다 처벌은 없었고 고디노는 집으로 돌려 보내 집니다.
그로부터 1년후 고디노는 18개월 된 애나를 다른 황무지로 데려 갔고
돌멩이로 머리를 내리쳤고 애나가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며 울자
이 역시 경찰에 의해 중단 됐습니다.
경찰은 고디노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고 아마도 두 아이간의 싸움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아버지의 손에 돌려 보냅니다.
1906년 3월 22일 마리아라는 소녀의 손을 잡고 황무지로 인도 했는데
그곳에서 목졸라 살해 하려 했으나 실패 했고 고디노는 쓰레기로 가득찬
도랑에 마리아를 묻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4월 5일
고디노의 아버지가 잠에서 깨어났을때 가족이 키우던 카나리아들이
죽은 채로 구두 상자에 넣어져 있는 것을 침대 옆에서 발견했고
그는 경찰서에 가 고디노를 처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경찰은 그의 이웃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고디노를 감옥에 두달
동안 수감 시켰습니다.
두달 뒤 세상으로 나온 고디노는 하루에도 몇 번 씩 자기 위로를 즐기며
다음 희생자들에 대한 망상을 즐겼습니다.
1908년 9월 9일 그의 눈에 또 다른 희생자가 들어 옵니다.
그는 두살 세베리노에게 과자 판매 약속을 하고 학교의 길 건너
창고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베리노를 익사시키려고 했는데 이 소동의 소리를
찾아 온 사람으로 인해 멈추게 됩니다.
고디노는 영악 스럽게도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따라 다니며 죽음에서
고통 받고 있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고 말함으로 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어린아이가 이런 무서운 짓을 저지를 수 없다고 믿었고
고디노의 말을 믿었으며 다음 날 부터 악마의 여인을 쫓기 시작 합니다.
그로부터 6일 후 고디노는 22개월 된 아이의 눈꺼풀을 담배로 지졌고
그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 온 엄마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그는
현장에서 빠져 나갔습니다.
고디노의 부모들은 아들의 행동들에 질리고 질려 경찰에 다시 한번
체포해 달라고 부탁 했고 경찰은 3년 동안 평화의 식민지로 보냅니다.
1911년 12월23일 크리스마스에 맞춰 집에 도착 했습니다 그는 두달 전에
열 다섯 살이 되었고 고디노가 돌아온 집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술을 배우게 되는데 그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가 술을 마시면 두통이 생겼고 그럴때면 살인 충동이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살인 말고 다른 즐거움을 하나 찾았는데 그것은 방화 였습니다 .
물자가 가득 채워진 창고에 불을 질렀고 그것을 숨어 보던 고디노는
죽음을 위협하는 불길과 싸우는 소방관의 모습을 보며 흥분을
느낍니다.
1912년 1월 21일 열세살의 소년의 시신이 빈 집에서 발견 됐습니다.
아이는 구타 당하고 벌거벗겨졌으며 전깃줄로 목이 묶인 채 였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은 찾아내지 못했으며 나중에 고디노가 자백할 때까지
알아 내지 못 합니다.
3월 7일 다섯살의 레이나가 상점의 신발을 구경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드레스에 불을 질렀고 소녀의 할아버지는 그녀를
구하려고 거리를 가로질러 달리는 소녀를 따라 뛰었지만 차에
치이며 사망 합니다.
근처의 경찰관이 자신의 몸으로 불을 꺼 병원으로 보냈지만 소녀는
16일 후 병원에서 사망 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살해 시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누군가에 의해
중단 되었고 경찰에게는 자신이 아이들을 구했다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경찰은 별다른 증거가 없었기에 그때마다 고디노를 돌려
보냅니다.
또 희생자들이 대부분 증언을 할 정도의 나이가 아니었기에 그들로 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습니다.
12월3일 고디노의 옆집에 살던 마리아 여사는 밖의 날씨를 보고
아들이 나가 놀아도 괜찮다고 판단 합니다.
그녀는 집안일을 해야했기에 아이에게 빨간공을 주며 밖으로 내보
냈습니다.
그녀의 세살 아들 제랄드는 기쁜 마음으로 공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고
그것이 그가 살아 있는 모습을 목격한 마지막이 됩니다.
구름낀 날에 희생자를 물색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고디노는 제랄드를
발견 했고 다른 아이들과 떨어트리기 위해 2센트를 사용하여 아이들이
사탕을 사먹도록 잡화점에 보냈습니다.
그는 제랄드에게만 작은 메모를 주는데 그곳엔 이 위치에 오면
사탕을 더 먹을 수 있다고 적힌 종이 였습니다.
하지만 고디노를 따라가던 제랄드는 빈 집 앞에서 두려움이 생겼고
엄마를 찾기 시작 합니다.
그러자 고디노는 돌변했고 강제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 갔습니다.
고디노는 버려진 밧줄로 제랄드의 목에 열세번을 감았지만 제랄드는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고디노는 그를 움직이지 못 하게 할 방법으로 그의 손발을 묶었습니다.
아이와 몸싸움 끝에 지친 고디노는 다른 무기를 찾기 위해 집 밖으로
향 합니다.
그는 건물 밖을 둘러 보며 깨진 벽돌 한 조각과 녹슨 못을 발견
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물건들을 집으려고 할때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릴
들었습니다.
고디노가 뒤를 돌자 한 남성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는 제랄드의 아빠 였습니다.
아빠는 아이를 찾기위해 미친듯 헤매이던 중에 고디노를 발견 한
것 입니다.
제랄드의 아빠는 고디노에게 아이를 봤냐고 질문 했고 이 뻔뻔 스러운
아이는
"네 우리가 공을 차기 시작했을때 그가 여기 있었어요 " 라고
대답 합니다.
제랄드 아빠는 뭔가 다른 희망이 있는 답변이 나올것을 기대 했지만
고디노는
"나는 제랄드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요 내가 아저씨라면
경찰에 갈거에요 어서 서둘러요 경찰이 아저씨가 아이를 찾는 것을
도와줄 거에요 "
라고 대답 했습니다.
제랄드의 아빠는 사라지고 고디노는 다시 무기를 모아 왔던 길로
뛰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집에 다다랐을때 뒤를 돌아 누군가 있는지 확인 했습니다.
그는 기절해 있는 소년을 깨웠고 못을 이마에 박아 넣었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의 작품을 잠시 감상하고 양철 조각으로 시신을
덮어 감춥니다.
이 사건은 다행스럽게도 목격자가 있었고 그녀는 고디노와 제랄드가
사탕을 사러 왔을때 일하던 점원이었습니다.
그녀는 큰 귀와 긴팔을 가진 소년과 아들을 묘사 하며 증언 합니다.
제랄드의 아빠는 아들의 위치를 직감했고 경찰들과 함께 고디노와
대화 했던 건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참혹하게 살해 당해 있는 자신의 아이의 모습을
확인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제랄드의 영혼을 위로하기위해 모였고 그 사이에 몰래
고디노가 숨어들어 제랄드의 모습을 구경 했습니다.
그리고 더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얼굴을 잡고 피해자의 머리에
못을 남겼는지 확인 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러고 있는 동안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못은 제거 된 상태였고 고디노는 그것에 몹시 화가 났으며
이상한 말을 하며 뛰쳐 나갑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하나 둘씩 쳐다 보았습니다.
경찰은 두 증인들이 말하는 용의자인 고디노를 체포 합니다.
당시 그는 읽진 못하지만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신문 기사를 오려내
주머니에 넣고 있었으며 제랄드를 살해 할때 사용했던 끈이 넣어져
있었습니다 .
채포 된 후 그는 네 번의 살인과 시도 했던 수많은 살인을 자백 합니다.
사람들은 사형을 원했지만 그의 나이가 열 다섯인걸 감안해 판사는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냅니다.
그가 정신병원에 수감된 동안 많은 곳에서 인터뷰를 왔고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그가 애정의 결여 지능의 한계 파괴적인 충동 그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의 문제 등에 비롯 된 것이며 이 범죄는 예정되어 있었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그곳의 의사는
"그는 바보이거나 유전적으로 타락한 , 본성없는 본능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위험 합니다 " 라고 판단 합니다.
그는 병원에서 두명의 재소자를 폭행했고 탈출의 조짐이 보여 법정에서
결정을 번복하여 교도소로 보내 집니다.
그는 감옥에서 다른 수감자들에 의해 폭행 당하고 수없이 강제적인
관계를 당합니다.
또 그 누구도 그를 찾거나 편지 또한 보내지 않았습니다.
1933년 그는 수감자들의 분노를 폭발 시키는데
감옥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목 졸라 죽이고 불태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심각하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1944년 11월 15일 고디노는 사망 했는데 죽음의 원인으로
십이지장 궤양으로 인한 내부 출혈로 추정하지만 그것이 확실한
이유인지 많은 의문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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