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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호러 하우스

채석장 연못의 소년


1921년 3월 8일 위스콘신 주 워키쇼에 있는 한 채석장의 직원이 

끔찍한 발견을 합니다. 


작은 아이의 시신이 채석장 근처의 연못에 떠있었습니다. 

아이는 대략 5~7세 정도로 추정되며 100센티미터 정도의 키 금발머리와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옷은 꽤 좋은 옷으로 블라우스 혹은 버튼업

셔츠, 브래들리 회사의 회색 스웨터, 속옷 검은 타이즈를 신고 가죽 신발을신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이런 상태에도 아이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습니다 

처음에 경찰 조사에서는 아이가 물에 빠져 익사했다고 믿었지만 

익사라고 하기엔 폐에 물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검시관의 조사에 의하면 둔기로 머리를 맞아 사망한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아이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기때문에 나중에 언론에서 소년을 리틀 로드

파운트르로이 라고 부릅니다.


경찰은 소년이 얼마나 연못에 있었던건지 확인하기 위해 조사했고 

며칠에서 6개월 정도의 범위로 확인했습니다. 


채석장의 직원인 마이크 코커는 경찰에게 빨간 스웨터를 입은 젊은 

여자가 2월 6일에 채석장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했으며 그 여자는

혹시  자신의 아이를 본 적 없느냐며 울며 돌아다녔다고 말했습니다. 

이 여성은 나중에 어떤 남자의 차에 올라 떠났다고 증언 합니다. 


머리에 둔기 자국을 발견하기 전에

첫번째 경찰의 추론으로 이 커플이 사랑의 관계를 맺는 중에 아이가 

혼자서  집을 나섰고 채석장에 빠져 사망했다는 추정을 내놨었습니다. 


이후 검시관에의해 머리의 열상을 발견하고 소년이 뭉툭한 무언가로 

맞았으며 폐에서 발견된 비정상적인 적은 양의 물은 이 이름 모를 

소년이 채석장의 연못에 빠지기 전에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추측 합니다.


경찰은 백화점의 주인인 데이비드 도브릭 이란 남성에게 한 가지 단서를

받게 됐습니다.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이 지난 1월에 자신의 백화점에서 판매된 옷이라고 

확신에차 증언 합니다. 

하지만 누가 그 옷을 구입했는지 밝혀 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 무렵 시카고에 J.B.벨슨이라는 남성이 이 소년이 자신의 조카이며 

자신의 여동생인 G.호르미지 의 아이라고 밝혔습니다. 


벨슨이라는 남성은 여동생의 전 남편이 그들의 두 아이를 납치했다고

주장하며 살해하겠다고 수없이 협박 했다고 말 합니다. 


그러나 이런 단서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

습니다. 

지역의 주민들은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위해 시체 안치소에 줄을 

서 차례 차례 지나 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민들 중 누구도 아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채석장 직원 마이크 코커에 의해 그가 목격했던

채석장 주변을 돌아다니던 여성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경찰이 전해 듣게 

됩니다. 

그 여성은 같은 채석장의 연못에서 자살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여성의 시신을 연못에서 꺼내기 위해 한 가지 생각을 짜내는데

폭발을 이용한다면 여성의 시신을 꺼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이너마이트를  연못에 터트립니다 그러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작은 위원회에서는 소년의 정보를 얻기위해 정보를 제공하는 이에게

250달러를 제공 한다고 밝힙니다. 

그럼에도 소식이 없자 보상금은 천달러로 올랐지만 누구하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경찰들은 소년의 시신을 더이상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1921년3월14일 오후 2시 카네이션으로 장식된 작은 하얀

상자에 담겨 장례식이 치루워졌고 무덤에서 휴식을 취하게 됐습니다. 


28년 후인 1949년 밀워키에서 온 한 검시관이 리틀 로드 파운트르로이

가 같은 년도에 사라진 호머 레마이라는 이름의 소년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호머 레마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실종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1919년 호머의 엄마는 결핵으로 사망했으며 이 후 호머를 노튼이라는

부부의 남아메리카 여행에 동행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다고

다소 믿기 힘든 주장을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밝히기 위해 그 부부의 뒤를 밟았지만

호머의 아빠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사망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또 이 노튼이라는 부부의 존재 자체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이렇다할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결국 아이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소년의 묘비에는 1921년 3월 8일  채석장에서 발견된 미확인

소년이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고작 5~7세 정도의 아이가 이름도 없이 누군가에게 살해 당해 땅에 

묻혔다니 너무나 안타깝고 슬픕니다. 


채석장 주변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아이를 찾던 여성은 누구이며 

이 소년은 어디서 왔길래 부모 혹은 친척들 한명 나서서 찾는 이가 

없었을까요. 

혹 살인에 부모가 관련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찾겠다고 나서는 이가 한명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소년을 호머 라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채석장에서 사망한채 발견된 신원 미상의 소년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