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스테리 호러 하우스

레지던트 생활을 여러번한 의사

4명의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연쇄 살인범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그가 60명을 살해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지만 고작 4건의
혐의만을 받았습니다.  


조셉 마이클 스완고  그는 일리노이주 퀸시에 자랐습니다.  
집안의 둘째로 머리가 좋은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아이였습니.
스완고는 머리도 비상했지만 예술적인 감각까지 있었는지
  나중에 클라리넷을 배워 연주하기 시작 합니다. 


가족은 늘 이곳저곳을 이주해 다녔지만 스완고가 군대에 들어가며 퀸시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들의 아버지는 굉장히 엄격한 사람이었고 그가 집에 없을땐 다들 편하게 
지냈지만 그가 집에 있다하면 숨을 쉬기 힘들정도로 긴장하며 지내야
했습니다 . 

스완고의 머리가 좋다보니 그의 엄마는 아들이 더 좋은 학업수준을 보이는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 했습니다.  
그는 사립 가톨릭 학교에 보내졌고 마이클의 다른 형제들은 공립학교에
다녔습니다. 
엄마의 예상이 맞았는지 스완고는 학교에서 뛰어난 우등생이었고 음악적인
부분 역시 놓치지 않고 공부하여 노래하기, 피아노 연주, 클라리넷을 배워
밴드의 일원이 되고 투어를하기까지 했습니다.  

1972년 그는 만족스럽게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찾았습니다. 
 일리노이주에
있는 한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을 지원받으며 음악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딱 2년동안 좋은 성적을 유지합니다 .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지며 사회로부터 등을 돌리고 은둔하기 시작했고
군대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1980년 해병대에 들어가 안전한 복무를 마치고 명예로운 전역을 했습니다.  
전역을한 그는 대학에 돌아가 의사가 되길 희망했습니다.  
화학 과 생물학 학위를 받기 위해 퀸시 대학에 들어갔고 4학년이 됐을때
논문으로 불가리아 작가 게오르기 마르코프의 독살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그는 운동도 잘하고 음악도 좋아하며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화학협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 였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의대에 들어갔습니다.  
이 당시에 학교에 들어갈수 있는 인원이 적어 굉장히 치열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에 성공했고 서던일리노이 대학에 입학
했습니다. 

하고싶었던 일인만큼 처음엔 의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료들과 의견도 나누고 공부도 함께하고 진지하다는 평가를 받았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에 그는 구급차 운전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친구들과 
교류가 없어졌고 고작 의대 1학년인 그는 그것으로인해 
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위태위태한 상황에도 그는 3학년으로 올라갔고 3학년이되며 환자와
만나게되는 일도 늘어났습니다. 

그에게 검진을 받은 사람들이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중 적어도 다섯 명은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동료들은 그를 제임스 본드, 더블오 스완고, 라이센스 투 킬 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에게서 자꾸 사람이 죽어나가니 동료들이 그를 무능력
하게 보기 시작했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기억 했습니다. 

근데 이게 그의 무능함이라기보단 죽음을 느끼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

스완고는 3세때부터 죽음이란 것에 관심이 많았고 홀로코스트와 수용소
사진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에 집착했습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그 집착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는데 끔찍한 자동차 사고
와 여러 잔인한 범죄들의 기사들을 스크랩하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이 스크랩북은 어머니도 함께 했습니다.  
아마도 잘난 아들이다보니 뜻이 있겠다 싶었던게 아닐까요?
스크랩북의 최고조는 그가 구급차 운전을 했을때 였습니다.  
얼마나 짜릿했을까요.  
신문으로나 보던 것들을 현장에 달려가 직접 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 일에 정말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학교일보다도 구급차 운전사로 더 열을 띄웠으니 학업이 정상일리 
없었습니다. 
어찌됐든 그렇게 졸업한 그는 스승에게 추천서를 받아 레지던트 프로그램에
지원서를 보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흥미를 잃은 것인지 신경외과에 들어갈수있었던 그는 필요한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것은 감독을 맡았던 이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것에대해 스완고에게 직접 대화하기위해 찾았지만 감독은 그를 만날
수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역시 구급차 운전을 하느라 바빴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감독은 드디어 그를 만났고 산부인과에서 임무를 부여 했습니다. 
그러나 환자를 맡은지 십분만에 환자의 곁에서 떠나는 것을 감독이 
목격합니다.  
10분만에 자리를 비운 그의 보고서는 굉장히 세세하고 철저한 보고서
였는데 그러나 이만큼의 세세한 내용들은 결코 그 시간안에 
 이루질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보고서는 감독에는 그를 제명시켜야겠다는 판단을 하게 했는데 
그것은 곧 인턴쉽이 취소되고 그가 졸업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다른 학생들 역시 스완고가 2학년때부터 쭉 조작했을 것이라고 의심했고
그가 의사로써 자질이 부족하다는 서명을하며 학교에서 내보내길 희망했습니다. 

스완고는 변호사를 고용해 학교와 동급생들의 행동을 막아 냈고 
 투표를한 결과 다시한번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의 졸업은 일년 연기되었고 이전보다 훨씬 엄격한 규칙이 적용 됩니다. 

그는 레지던트 프로그램을 다시 신청하는데 그에대한 평가가 굉장히 좋지
않았음에도 주립 대학의 신경외과의 굉장히 유명하다는 레지던트 프로그램
에 참여할수있었습니다.  
스완고가 정말 운이 좋았었는지 신청한 60명중에 그 혼자만이 합격했
습니다. 

1983년부터 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인턴쉽을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참여한지 얼마되지않아 환자들이 원인불명으로 사망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중에 살아남은 환자는 자신이 위중한 상태에 빠지기 전에 스완고가 
약을 투여했다고 전했으며 간호사들 역시 그가 있을 시간이 아닌데 
환자의 방에 들어와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냥 들어왔을수도 있지만 그가 방을 나오고난뒤 환자가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목격과 증언들로 수사가 진행되긴 했지만 불명확하다고 판단 수사는
종료 됩니다.  

조사가 끝나고 그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부서가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곳으로 옮기자 마자 몇몇 환자들이 사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들뿐 아니라 스완고가 프라이드 치킨을 사겠다고 해서 그것을 얻어
먹은 주민들이 아주 많이 아프게 되는 사건도 일어났었습니다.  
스완고 역시 닭을 먹었지만 그만이 멀쩡했습니다.  

그의 평가는 병원에서 당연히 좋지 못했고 인턴쉽 1년 과정만 마치고 
끝나게 됩니다.  
그렇게 나오게된 그는 오하오이에서 가족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돌아가기전 오하이오 주 의료위원회에서 약을 실습 할수있는 자격을 요청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그는 가족에게 당연히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알리지 않았고 
그냥 그곳의 다른 의사들이 싫다고만 대답 했습니다 . 

1984년7월 아담스 카운티 앰뷸런스 회사에서 응급 의료 기술자로 일하게 
됩니다. 
처음엔 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하진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가 언급하는
내용들과 그의 스크랩북 사람들의 죽음에대한 그의 사상 뉴스에서 나온
살인사건과 교통사고에대해 흥분하는 모습들에 모두 그를 기괴하다고 
인식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가 확실히 이상하다 판단된것은 도넛 사건으로 시작 됐습니다. 
그는 9월 동료들을 위해 도넛을 가져왔고 그 도넛을 먹은 동료들은
모두 심각하게 아프게되 병원에 가야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스완고가 건내준 음식을 먹거나 마시는 사람들은 아프게 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자 몇몇동료들이 그를 의심했고 독극물 반응 
검사를 실시 합니다.  
그리고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자 경찰의 수사가 시작 됐습니다.  

그의 집을 수색한 경찰들은  마약과 독극물 독약에 관한 책
주사기등을 발견했고 스완고를 체포 했습니다.  

 1985년8월23일 그는 유죄를 받고 5년의 징역형과 오하이오주와 일리노이
주에서 의료 면허를 박탈 당합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무슨 생각이들었는지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시작하며
자기가 무죄라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증거들은 조작된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는 5년 형이었지만 2년을 복역한뒤 풀려 나는데 1987년 8월 21일에 
풀려 났습니다.  

석방된뒤 그는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준 여자친구와 함께 버지니아 햄프턴
으로 이사합니다. 

버지니아로간 스완고는 의료허가를 신청하지만 범죄기록으로 거부됩니다.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던 그는 눈을 돌려 직업 상담사로 취직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동료 3명이 메스꺼움과 두통을 
겪었습니다. 
스완고는 일하는 시간에 스크랩북에 기사를 끼워넣다가 들켰고 회사의 
지하실을 자신이 가끔 묵는 침실로 개조한 것 역시 들키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1989년에 해고통지를 받았습니다.  

어찌 이리 문제가 많은 사람이 일은 또 그렇게 잘 구하는지 
그는 뉴포트 뉴스에서 실험실 기술자로 자리를 맡게 됩니다.  
그를 믿어준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지만 그들의 사이는 급속도로 나빠지며
틀어졌습니다. 
아내 리타를 무시하고 각방을 썼으며 그녀의 통장에 있는 돈을 마음대로 
꺼내 썼습니다. 
리타는 그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믿고  1991년 그와 이혼을 합니다 .

새로운 직장에서도 그는 가만있지를 못했습니다 주목받는 것은 정말 
신경쓰지도 않는듯 말입니다.  
뉴포트 뉴스의 몇몇 직원들 역시 심각한 복통과 구역질 어지러움증에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 했습니다 .

피해자들에겐 다시 없을 고통이지만 스완고에겐 소소한 즐거움일 뿐이었습니다. 
그것에 만족스럽지 못했을 그는 다시 병원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에겐 그곳이 천국이나 다름 없었을테니까요. 

그래서 레지던트 신청을 하기로 마음먹고 이름을 바꾸기로 합니다.  
데이빗 잭슨 아담스로 이름을 바꾸고 오하이오 밸리 메디컬 센터에 
레지던트 프로그램을 신청 했습니다.  

의과장은 그의 이력서를 보며 여러번 그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에대해 스완고는 거짓을 꾸몄고 자신이 식당에서 말다툼을 한
혐의에대해 유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의과장은 그런것 치곤 처벌이 너무 심하다고 판단하고 계속 확인하려했고
스완고는 그것을 믿게 만들기 위해 몇 개의 문서를 위조해 만들었습니다.
또 시민권 회복 신청 역시 주지사의 편지를 위조해 만들어냈습니다. 

의과장은 서류를 받고도 의심을 했고 그것을 퀸시 당국에 보내 사실을
확인하려 했습니다.  
퀸시 당국은 진짜 서류를 의과장에게 보내 그가 스완고의 신청을 거절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스완고는 그것에 겁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다른 병원에 지원하면되 라고 판단하고 사우스 다코타대학의
레지던트 프로그램에 지원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역시 그의 전과 사실에대해 여러차례 질문을 했고 스완고는 
이번엔 자신을 질투하는 다른 동료 들이 그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말했습니다.  
이후에 병원측은 그와 따로 개인면담을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레지던트
프로그램에 합격 할 수 있었습니다.  

뉴포트 뉴스에서 기술자로 일할 당시  뉴포트 뉴스 리버사이드

병원에서 의학 강좌를 듣다가 크리스틴 이라는 여성과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게 됐고 크리스틴은 약혼을 취소하고 스완고와
함께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크리스틴은 그를 따라 사우스다코타로 이주해 함께 생활합니다. 

크리스틴은 새로운 곳에서 직장을 잡는데 왕립 병원 중환자실에 간호사로
취직합니다. 
그리고 같은 곳에서 스완고가 레지던트를 시작 했습니다.  
스완고는 일전의 병원들과 전혀 다른 태도를 고수 합니다.  
동료들과 간호사는 그가 아주 좋은 사람이고 훌륭한 하다고 칭찬을
하였고 그 누구도 의심할만한 행동을하지 않았습니다.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그는 미국 의학 협회에 가입하기로 하고 
신청서를 넣었습니다.  
그러나 의학협회에서 신원을 철저하게 조사하였고 그의 범죄 기록에대해
협의회에 넘기기로 결정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친구인 사우스 다코타 의과대학
학장에게 전화를 걸어 스완고에대해 알렸습니다.  
그렇게 그는 병원에서 내보내지게 됩니다.  

크리스틴 전혀 몰랐던 스완고의 사실에대해 알게되고 경악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몇 달동안 그녀는 심각한 두통에 시달리는 것을 시작으로 
점점 황폐해져 갔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알몸으로 길을 헤매고 다녔는데 
 경찰이 그것을 발견하고 정신병원에 보내졌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그녀는 안되겠다 싶어 스완고를 떠나 버지니아로 돌아
왔는데 그날부터 아픈것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스완고가 그녀에게 나타나 그녀를 설득하고 달래 다시 함께하게 
됩니다.  


스완고는 다시 레지던트 지원서를 넣기 시작했고 뉴욕 주립대학의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에 뽑혀 그곳을 다니게 됩니다.  
크리스틴을 곁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는 메디컬 센터의 
내과에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스완고가 맡는 환자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기 시작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게 크리스틴은 스완고가 떠나고 나서도 연락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자신의 예금을 전부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고 
1993년 7월에 총으로 자살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총 세번을 그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참 사랑이란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스완고 때문에 자신이 딸이 자살을 했으니 그를 질색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병원에 들어갈수있는 방법이라곤 거짓말뿐이었으니 이 사실을
폭로하기로 합니다.  
어머니는 사우스다코타에서 일하는 크리스틴의 간호사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데 더이상 스완고가 내 딸을 해치지못해 기쁘다는 내용과 현재 
스완고가 있는 주소를 모두 담았습니다.  

크리스틴의 친구는 이 정보를 의과대학 학장에게 알렸고 그는 이 사실을
그쪽에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전달받은 병원은 스완고를 해고 시켰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전달받았던 의과대학 학장은 더이상 그가 취직할수없도록
전국의 모든 의과대학과 병원에  스완고가 얼마나 교묘하고
무서운 사람인지 알리며 경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해고된 그는 갈만한 곳을 찾고 있었는데 FBI는 자격증을 위조한
혐의로 그를 찾고 있었습니다.  
1994년7월 그는 애틀랜타의 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곳은 폐수
처리 시설로 스완고가 마음만 먹는다면 애틀랜타 급수시설에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FBI는 대량살상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며 회사에 알렸고 스완고는
거짓으로 지원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 당합니다.  

의사는 계속 하고싶고 자기를 받아주는 곳이 없으니 그는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스완고는 의사들이 외국에서 일할수있도록 도와주는 기관에 신청서와
추천서를 보냈고 루터 교회는 기관을 통해 그를 고용 합니다.  
그리고 그는 짐바브웨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의 병원에서 의사가 온다니 좋아했지만 일을하다보니 그가 기본적인
몇 가지들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됐습니다.  
그래서 자매병원으로 보내져 5개월간 훈련을 받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훈련을 받는동안 평판이 너무 좋았습니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 동료들과의
관계등 말 할 것 없이 의심 할 것 없이 좋았지만 다시 돌아온 그는 굉장히 
태도가 나빴습니다.  
환자들에게 무례했고 다른 모든것에 관심이 없는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돌아오고 얼마지나지 않아 환자들이 사망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중에 살아남은 환자가 스완고가 들어와 주사를 놓은 것을 기억했고 
간호사들도 사망한 환자들이 죽기 몇분전에 그가 근처에 있었던 것을
목격했습니다.  

닥터 즈시리는 경찰에 연락을 취했고 그의 집을 수색한 결과 
마약과 독극물을 발견했습니다.  

1995년10월13일 해고를 당한 그는 짐바브웨에서 의료행위를 할수있는
 의료면허를 회복하기 위해 1년동안 짐바브웨에 머물렀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영 아니었는지 잠비아로 도망칩니다.  
그가 도망치며 그가 여지껏 저질렀던 범죄들의 증거가 드러나기 시작
했습니다.  

1997년 6월27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로얄 호스피탈로 가기위해 잠시 
시카고 공항에 입국을 했다가 이민국 관리들에 의해 체포가 됩니다 . 

1년후 스완고는 정부를 속인 것을 인정해 3년 6개월 형을 선고 
받았고 2000년 그가 석방되기 며칠전에 한건의 폭행 세건의 살인
세건의 허위진술 우편 사기등의 혐의를 다시 적용 받게 됩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짐바브웨이에서도 눈에 불을 키고 그를 아프리카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저지른  다섯건의 살인혐의에대한 죄를 묻기위해서 말입니다.  

스완고는 처음에 무죄라고 알렸지만 짐바브웨로 넘어가면 사형에 
처해질수도 있었기에 살인과 사기죄를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는 뉴욕에서는 가석방 가능성 없는 무기징역에 처해졌고

오하이오주에서는 20년 뒤에나 가석방 자격이 주어지는 종신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스완고는 공부머리만 좋았었나봅니다. 
이렇게 누구 눈치보는거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게 어떻게 보면 대범하고
어떻게 보면 참 멍청하게 보입니다.  

생각보다 아주 많은 시간을 체포되지않고 의사 생활을 지속적으로 
이어갈수있었다는게 참 놀랍습니다.  

자신의 고향 미국을 뛰어넘어 해외로까지 진출해 자신의 독극물 살인을 
즐기던 연쇄살인마 조셉 마이클 스완고의 이야기 였습니다.

 

 

'미스테리 호러 하우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범죄자 만들기!?  (0) 2019.06.11
유바카운티의 다섯 남자  (0) 2019.06.07
목수 일을하던 그  (0) 2019.05.31
키가 작은 단점을 승화시킨 도날드[실화]  (0) 2019.05.28
호주의 트루로 킬러  (0) 2019.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