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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호러 하우스

80년대 일본 아이돌 스타의 괴담!?


80년대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유명 여자 아이돌 자살 사건의 

주인공인 오카다 유키코 의 도시 괴담이 있습니다. 


아마 썬 뮤직의 저주 라고 접해 보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인기가 매우 많던 그녀의 자살은 많은 팬들이 자살을 따라하게 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에 이것을 육코(애칭) 증후군이라고 불렀습니다.


오카다 유키코 1967년 8월 22일에 태어나 평범하게 커가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는지 실력이 뛰어나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기도

했었습니다. 

티비에서 방영하던 애니메이션 베르사유 장미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흉내내며 연기자의 소질을 보인 것을 계기로 오디션에 참가 합니다. 

그리고 티비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게 되었지만 중요한 배역이 

들어오려는 찰나 그만두었습니다. 

 연예인이 되어야 할 모양이었는지 그 후에도 잡지에 사진을 보내 

그랑프리가 되거나 니콘에서 연 중 고등학생을 위한 카메라 교실의

사진 모델을 맡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연예인이 될 마음으로 1982년에 스타 탄생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전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은 내신을 걸고 넘어지며 출전을 반대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학교를 결석하고 나고야 지역 예선에 출전 했고 

12월에 있을 대회에 나갈 기회를 얻었지만 가족과 선생님의 반대로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강단이 있는 성격인지 그녀는 꿈을 위해 단식 투쟁에 들어갔고 결국 

손을든 어머니가 그렇다면 학교 시험에서 1위 성적을 내고 

모의 고사에서 학교 5위 안에들 것이며 1 지망 고등학교에 합격을 해라 

라며 세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의 마음 가짐으로는 절대로 힘들었을 조건들이었지만 

유키코는 공부를 파고들었고 세 가지 조건 모두 만족 시킵니다. 


그녀가 대단했던 것이 지역 예선을 통과 했을 뿐인데도 당시 유명했던

회사의 프로듀서가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찾아왔을 정도 였습니다. 


그녀는 스타 탄생에서 합격으로 최종 발표가 나며 4개의 회사 중에 썬 

뮤직 이라는 회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명인 오카다 유키코의 이름이 붙여 집니다. 

이후에는 배우와 아이돌 가수 데뷔를 위해 준비를 이어 나갔습니다. 


아이돌 가수로 데뷔하며 그녀는 승승장구 했고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가수 생활뿐만 아니라 드라마 촬영과 라디오 등 과로로 링거를 맞아가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86년 3월 3일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월 4일 혼자서 

생활을 위해 독립을 하게 됩니다. 

유키코는 4월 5일에 있을 전국 콘서트와 10일에 하는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4월 8일 유키코가 사는 맨션의 2층 주민들이 가스 냄새가 난다며 

관리인에게 신고했고 관리인은 도쿄 가스에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고 구조대가 그녀의 집 문을 열었을때 유키코는 벽장의 아래에 

웅크리고 울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된 그녀는 치료를 받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12시 15분 회사의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합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 했으며 

자필로 쓴 유서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4월 8일 정오에 투신 자살을한 유키코의 시신은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실렸습니다. 

당시 한 신문사에서만 현장에 있었는데 경찰이 오기 전이라 좋은 

앵글에 담기 위해 이리 저리 발로 넘겨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 사진에 

담아 냅니다. 


이후에 이 기자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만 

사망한 기자는 전혀 상관없는 기자라고 하며 실제로 촬영한 기자는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자는 처음에 그 시신이 오카다 유키코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카다 유키코가 자살 미수인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그것을 

촬영하러 사무실로 가다가 시신을 발견하고 제 입 맛에 맞게 사진을 

찍은 것 입니다. 


그녀의 시신이 발견 됐을때 유키코의 시신인지 몰랐기에 기사화를 

하지 않을 예정이었고 그날 밤 뉴스에서 역시 그녀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뉴스가 끝날쯤에 아나운서가 연쇄 반응을 염려해 자살 보도를 삼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온 갖 티비 프로에서 사건을 다루며 현장에서의 시신

촬영등을 생생하게 보도해 시청자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유코 신드롬을 일으켜 그녀를 따라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 나게 됩니다. 

1986년 일본의 젊은이의 자살이 800건을 넘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평상시에 우울증이 심각했다며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라고 이야기가 

나왔으며 그녀가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나는 연상의 배우에게 반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때문에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회사 대표에 따르면 그녀가 적은 노트에 미네기시 토오루 라는 배우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에 그것을 토대로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일 것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인기가 많은 그녀가 하루 아침에 사망하고 나니 별별 소문들이

생겨났고 괴담 역시 떠돌게 됩니다.  


그리고 저주에 대해서 역시 소문이 도는데 더 텔레비전 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의 소개와 프로그램 표가 실린 잡지는 연예인들이 

표지를 찍을때 레몬을 들고 찍습니다. 

이것은 오카다 유키코의 유령에 의해 편집부가 고생을 했기때문에 

부적처럼 사용한다고 합니다. 

왜 레몬을 사용하느냐 유키코가 자살하기전인 3월 17일 잡지 표지

촬영을 했는데 그때 레몬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좀 웃기는 이유이긴하지만 지금도 사용한다고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오카다 유키코가 숫자 4에 저주에 걸렸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녀의 데뷔가 4월 

사귀던 애인이 42세 

기숙사에서 독립하던 날이 4월 4일 

새 아파트가 402호 

죽기 전날 본 영화가 록키4 

사무실 주소가 요츠 4쵸메 

그리고 자살은 이사 4일 후 4월 8일 이라는 도시 전설이 있습니다. 

조금 억지 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4가 들어가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녀와 관련된 괴담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6월 18일 생방송  밤의 히트 

스튜디오 라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유키코의 유령이 찍혔다는 것 입니다. 


그것도 유키코의 라이벌이라고 말하던 나카모리 아키나가 노래를

할 당시 그녀의 뒤에 오카다 유키코가 피 묻은 드레스를 입고 박수를

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 했습니다. 


방송 다음날 전국의 초 중 고등학교에서 그녀의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역 상관없이 비슷한 모습의 목격담이 나왔고 방송국은 사실 확인을

위해 방송을 다시 확인했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아 조명에 의한

일시적인 환각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이 프로그램 말고도 다른 프로에서도 나카모리 아키나가 노래할때 

그 뒤에서 오카다 유키코의 모습을 봤다는 목격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유령이 나타날때는 대부분이 여자 아이돌인데 나카모리 아키나나

같은 시기 활동했던 아이돌들이  나올때라고 합니다. 


나카모리 아키나가 나올때 오카다 유키코가 나타나는 이유가 

그녀의 노래인 집시 퀸의 가사가 유키코의 죽음에 관한 노래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백 스물 다섯번째 페이지에서 끝난 두 사람 

(그녀가 뛰어 내린 시각인 12시 5분 )

불타는 사랑의 도중에  

(그녀의 애인과의 강제적인 이별)

와인 색을 물들이는 무거운 하늘에 탄식

(그녀가 투신하고 흘린 피 )

아스팔트의 베드에 

(그녀가 뛰어내린 콘크리트)

한숨이 넘치다 

(그녀의 뇌가 흩날렸다는 모습 )

이라는 약간의 끼워 맞추기 형식의 괴담 입니다만 

들으니 그럴싸해 보이긴 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자살을 택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정말 

사랑 때문이었을까요?

유명 아이돌이었다보니 죽어서도 사람들 입에 오르 내리느라 편히 

잠들지 못하내요. 


힘든 노력 끝에 소망하던 연예인이 되었건만 안타깝게 져버린 스타

80년대 일본을 사로 잡았던 오카다 유키코의 자살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