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벅 럭스턴 1823년 3월 21일 인도 봄베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봄베이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말라리아 위원회에서 의료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5년 5월7일 모탄이라는 여성과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짧았고 그는 영국으로 넘어와 의학에대한 다른
분야에 대해 대학원 공부를 마쳤습니다.
그후에 런던으로 이사온 그는 벅 럭스턴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이사벨라 커
라는 여성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1930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들은 랭커스터에 살기 시작했고 세명의 아이들을 낳아 길렀습니다.
가족은 화목했고 웃음이 넘쳐났으며 남편 럭스턴은 일이 바빠졌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는데 환자가 의료비를 지불할 수 없는 경우엔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마음씨 좋은 의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화목해보이던 가족이 어느 날 부터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일이
잦아졌고 이웃들은 이사벨라가 여러번 아이들과 함께 여동생의 집으로 가는
것을 보곤 했습니다.
알고보니 이렇게 존경받는 의사 럭스턴이 질투가 심각하게 많았고 소유욕으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결혼하고 사년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지긋 지긋해진 이사벨라는
럭스턴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은 이사벨라를 다독이고 설득해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 되었고 그집에서 3년동안 일해오던 하녀 메리 진
역시 사라집니다 .
그녀의 실종이있고 어느날 수잔 헤인즈라는 여성이 스코틀랜드 남쪽의 덤프리스
지역 강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개울가 사이에서 사람의 팔로 생각되는 무언가가 보인다고 느꼈고
그 후에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 했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사건은 이전에는 경찰에서 다루어본적 없었던 사건이었기에
경찰 역시 혼란 스러웠습니다.
경찰은 시신 한구의 몸통 하나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며 눈 귀 코 모두 제거
되어 있었고 피가 몸에서 몽땅 빠져나가있는 상태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전문가에의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들은 살인범의 실수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범인은 시신의 일부분을 신문으로
감쌓는데 그 신문은 랭커스터와 모레캄베 지역에서만 나왔던 신문이었습니다.
경찰은 구독자들을 검사했고 그곳에서 닥터 벅 럭스턴이 나오게 됩니다.
그들은 시신이 두명의 여성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확인하고 벅 럭스턴의 아내와
메리가 스코틀랜드로 휴가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그 말을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배수구와 그 잔해들을 수거하여 조사하기 시작 했습니다.
법의학자는 이사벨라가 티아라를 착용하고 찍은 사진을 찾아내고 티아라를
하고있을때 카메라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를 계산했고 같은
위치에서 두개골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진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시대에 획기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경찰 조사가 이루어지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의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끝이 없었습니다.
경찰은 목격자의 제보를 받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시신이 버려지던 날로 추정되는 날 회색의 오스틴 트웰브 살룬 차종을
목격한 이가 있었습니다.
경찰은 1935년 9월 15일 럭스턴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며 시간표를 작성
했는데 사건 전후 며칠동안의 행동에 수상함을 느꼈습니다.
럭스턴을 향한 수사의 끝에 그는 결국 경찰에 체포 됩니다.
럭스턴은 처음에 강하게 반응하며 단호하게 발뺌했습니다 하지만
곧 메리의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고 11월 5일에 아내 이사벨라를 살해한
혐의가 추가 됐습니다.
그는 메리라는 하녀를 고용하여 3년을 함께 했습니다 1935년9월
부부는 격렬한 부부싸움을 했고 아내를 향해 애인에대해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화가난 그는 이사벨라의 목을 조르기 시작해 죽게만들었고 이 모든 것을
목격한 메리에게도 너도 죽어야 한다고 말하고 그녀 역시 살해 했습니다.
그후에 럭스턴은 시신을 버리기 편하게 자신의 의학지식을 이용하여
두 시신을 해부했습니다.
그는 시신의 일부분들을 신문을 사용해 감싸 포장했고 차에 운반합니다.
당시 사람이 많이 방문하지 않는 지역임을 미리 알았던 곳으로 가서
하나씩 던져 버리기 시작 했습니다.
그날은 폭풍이 올 것이었는지 바람이 많이 불고 바람과 비가 내렸습니다.
계곡의 꼭대기에서 시신을 버리던 그는 자신의 범죄가 완벽하다고 생각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것을 완벽하게 처리했다 생각한 럭스턴은 알리바이를 만들기위해
여행을 다녔습니다.
찾아온 경찰에게
럭스턴은 자신은 스코틀랜드를 가지 않았다고 부인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수를하는데 차를 운전하다 자전거를 타고가는 사람을 치었고
경찰이 그를세워 차량 번호를 등록해두었었습니다.
그후에 경찰이 시신의 신원을 알아내며 럭스턴이 체포 되었고 그 목격으로
빼도박도못하게 그의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들통 납니다.
경찰은 그의 집에서 욕조에서 80여개의 혈흔이 튄 타일을 보고
이곳이 살해된 장소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렇게 체포된 그의 재판에서 많은 증인들이 참석하였고 부부사이의 일을
증언 합니다.
그의 재판의 증인들은 그가 지속적으로 아내 이사벨라가 바람피고 있다고
주장하며 비난했었고 그녀가 공격당한 이야기들을 증언했습니다.
럭스턴은 아내가 스물다섯의 변호사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확신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사라지기 2주전에 이사벨라가 변호사를 만나는 것을 차를타고
미행했었고 그와 아내가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확신 했습니다.
34년 4월에는 바람을 계속 피운다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었으며
그집의 가정부는 베개 밑에서 권총을 발견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이사벨라의 여동생은 럭스턴에게 언니가 자살을하려했다는 것을 상담했더니
대뜸 만약 언니가 아이들을 데려가려한다면 모두 목을 베어버리겠다며
화를 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 말 이후로 스스로를 진정시켰는지 무척 자상해졌다고 이어 말했습니다.
그의 재판에서 가장 인상깊은것은 위에서 말씀드렸던 사진 방법이었습니다.
굉장히 혁신적인 기술로 협곡에서 발견된 두개골을 사진을찍고
이사벨라가 생전에 찍었던 사진을 그 위에 겹쳐 놓으며 얼굴의 윤곽과
턱선 얼굴크기 등을 배심원들에게 확인 시켜주었는데 이것이 그가 유죄라는
것에 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재판은 11일간 이루어졌고 1936년 3월 13일에 끝났습니다.
그는 교수형이 내려지게 됩니다.
그녀가 바람을 피웠는지 아니면 피우지 않았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본인의 이기적인 마음때문에 폭력이나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또 그런 잔인한 마음이 사랑이라는 이름에 가려지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다가 이별을 할 수도 있는 일을 소유욕에 눈이 멀어
폭행을 저지르고 살인까지 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고 미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내를 의심해 자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데다 그 상황을 목격해버린
죄없는 하녀 역시 살해해 버린 닥터 벅 럭스턴의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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