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소브라즈의 본명은 햇챈드 바호나니 구루무크 찰스 소브라즈이다.
비키니 살인자 혹은 독사로 불리운 찰스는 최소 12건의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베트남 어머니와 인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찰스가
태어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인도 여성과 결혼을 한다
어머니가 프랑스 장교와 결혼을하며 그는 프랑스로 보내져 기숙학교에 들어갔다.
이것에대해 어머니가 프랑스 식민지 시대였기에 찰스의 친아버지에게 보복행위를
하기위해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군인인 새 아버지가 하는 행동을 아이는 고스란히 보았고 소리없이
목격해야만했다.
후에 태어난 부부의 아이만큼 관심을 받지 못한 찰스는 자제력이 좋지 못하고
약간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외국으로 넘어가 부모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인종차별도 있었기에
적응이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베트남으로 돌아가기위해 도망을 치지만 그때마다 친 아버지는 그를
다시 돌려보냈다.
찰스와 아버지는 대화를 통해 결국 아들을 받아들이기로했고 티켓을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어려움 끝에 베트남에 돌아와 아버지의 차를 망가트리고 인도의
친척들과 함께 살게된다.
찰스는 베트남으로 넘어가 새 아버지를 만나지만 아버지는 분노하며 그를 프랑스로 돌려보낸다.
어긋나기 시작하며 찰스는 범죄를 시작하는데 자동차를 훔쳐 경력을 쌓기
시작 했다.
나름대로 스스로의 삶을 치열하게 살던 그는 여성을 만나 결혼도하고 직장도
잡아 일을시작 하였다.
하지만 방탕하게 살던 그는 얌전한 삶이 무척 지루해졌다.
지루해서였는지 범죄를 또 저지르는데 여동생의 계좌로 위조수표를 만들어
사용하다가 감옥에 보내지게 된다.
가족이라고 봐주면 안됐었다.
여동생은 고소를 취하하였고 자유로운 몸으로 그는 다시 세상에 보내졌다.
감옥에서 나온 찰스는 다시 위조수표를 만들어내 돈을 불렸고 아내를 봄베이에
데려가려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좀더 적합한 사업을 시작한다.
밀수도하고 미국과 유럽 관광객의 여권을 훔치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그는 델리에서 보석 강도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탈출을 하려했지만
보석금을 내고 자유의 몸이 된다.
탈출시도도 있었지만 그것은 문제가되지 않았던듯하다.
풀려난 그는 당장에 아프가니스탄으로 도망치지만 그곳에서 다시 절도를
저질러 수감되게 된다.
그러나 얼마나 엉성하면 그곳에서 탈출을하여 프랑스로 돌아가 자유를
찾았다.
1973년11월 찰스는 형제와 함께 관광객들을 노리기위해 이스탄불에 머물렀다.
그러나 곧 그는 동생과 체포되었다. 하지만 프로 탈출러 찰스는 동생만 버려두고 혼자서 도망을 쳤고 델리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헤로인 사업을 시작하며 새로운 사업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1975년 10월 찰스는 미국인 관광객인 테레사 놀튼을 살해하고 자신의
라이벌 하킴을 폭행하고 목을 부러트려 살해한뒤 불을 질러 태웠다.
얼마 지나지않아 미국 관광객 제니의 시신이 꽃무늬 비키니를 입은채
태국의 조수 웅덩이에서 익사한채로 발견되었다.
나중에 부검 결과 그녀는 살해 당한 것으로 판명이난다.
또 프랑스 관광객인 스테파니를 방콕에서 살해하고 12월 6일 홍콩에서 만난
네덜란드 학생인 행크와 그의 약혼녀 코넬리아에게 독을 먹였다가 다시 건강해
지도록 만든뒤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만들었다.
이때 하킴의 여자친구인 카루가 남자친구의 행방을 찾기위해 그를 방문한다.
찰스는 들킬까 겁이나 이 커플을 살해해 불태워 버렸고 그들의 시신은
1975년 12월18일에 발견된다.
곧이어 카루의 시신이 발견되는데 미국 관광객 제니의 시신이 입고 있었던
비키니와 비슷한 스타일의 비키니를 입은채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시신이 발견되고 이후에 찰스는 비키니 킬러라는 별명이 붙여진다.
찰스는 그들의 여권을 이용해 네팔로 돌아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캐나다인 로랑
과 미국 관광객 코니를 살해해 버렸다.
카트만두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지만 신원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들의 신원이 밝혀지기 전에 그는 여권을 이용해 태국으로 돌아온다.
1976년 1월 9일 찰스는 공범과함께 프랑스인 세명에게 약물을 투여해
살해하려고 마음 먹는다.
그들이 자신의 범행 사실들을 눈치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사람에게 약물을 먹여 살해하고 도로변에 버렸지만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모두 살아남았다.
3월에 그는 방콕에서 가짜 여권과 살인 혐의로 체포되지만 수사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 태국 측에서 관광업에 피해가 갈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쉬쉬하는 나라와 단체도 있었지만 네덜란드 배낭족 살해 사건을
조사하고 이름도 모르는 찰스를 수사해나가는 외교관도 존재했다.
그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찰스의 아파트를 수색했고 독극물과 피해자들의
물품등 수 많은 증거들을 발견한다.
그사이 찰스는 공범을 살해하고 보석을 팔기위해 제네바로 향했다가 다시 봄베이로
돌아온다.
다시 돌아온 그는 자신의 범죄 조직을 만들기로하고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여성들을 가담시켰다.
7월 그는 프랑스 관광객들을 속여 자신들을 가이드로 이용하게끔 만들었다.
그들에게 약물을 먹여 자신의 뜻대로 하려했지만 실수가 있었다.
약물이 너무 빨리퍼져 몇몇 프랑스 관광객이 그 자리에서 약물 반응을
일으켰다 이상한 행동에 다른 동료들이 이 가이드의 행동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관광객들에의해 체포되게 된다.
그의 공범이던 두 여성 바바라와 메리는 잡히고 심문을 시작하자마자
모든 것을 자백하였다.
그들은 재판을위해 뉴델리에 있는 감옥으로 보내진다.
그곳은 굉장히 악명 높은 감옥이라고한다.
그 명성답게 바바라와 메리는 버키기가 힘들었는지 재판을 받기 전까지
지속적인 자살시도를 했다.
그러나 프로 감방러이자 프로 탈출러인 찰스는 미리 숨겨온 보석을 뇌물로
사용하여 편안하고 안락한 시간을 보냈다.
관종끼가 있는지 그는 자신의 재판에서 변호사를 고용했다가 바로 해고하고
단식 투쟁도 벌였다.
다들 그가 사형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12년의 형량이
내려졌다.
돈만 있으면 참 살기 쉬운 세상이다.
그는 교도관들을 돈으로 구슬려 어디 고급 호텔에 놀러온 손님처럼 지냈다.
티비는 물론 교도소에선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을 먹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이곳의 생활이 끝나면 다음 태국의 체포 영장으로 다시 형기가
시작될 것이기에 안락한 이 교도소에 머물 방도가 필요했다.
우리 프로 탈출러 찰스는 크나큰 파티를 열어 교도관도 초대하고~
동료들도 초대하여 모두를 잠재웠다.
대량의 수면제를 사용해서 말이다.
그는 그렇게 유유히 감옥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다시 체포되어 징역을 10년 더 받아 자신의 초호화 감방 생활의
기간을 늘렸다.
1997년2월 그는 석방되는데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증인도 증거도 대기
어려웠다.
찰스는 그렇게 파리로 넘어가 편안한 생활을 즐기게 된다.
연예인병이라도 생겼는지 자신의 인터뷰와 사진 촬영에 수천달러를 요구
하거나 영화계약에는 1500만달러가 넘는 돈을 제시했다.
마음에 긴장을 풀고 살아서 일까 그는 2003년 9월17일 카트만두에서
기자에게 발견된다.
기자는 발빠르게 경찰에 신고했고 네팔 경찰은 서둘러 그를 잡아들였다.
2004년 8월20일 카트만두 지방 법원은 그에게 살인혐의로 무기징역을
내리며 유가족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정의가 실현되었다.
찰스는 자신은 재판도 못받고 형을 선고받았다고 주장하며 항소를 했지만
2005년 유죄판결이 확정된다.
2008년 그는 네팔에서 온 니히타라는 여성과 약혼을 하는데 니히타는 당시
스무살이었고 찰스는 오십이 넘은 남이였다.
그녀는 변호사의 딸이라고 하는데 이미 결혼식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돌지만
네팔 경찰은 부인하고 있다.
그는 니히타를 통해 자신은 어느 법원으로부터 살인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연쇄살인범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억울해! 나는 인종차별을 당했어! 나는 아무도 살해하지 않았어!"
찰스는 자신이 저지른 모든 혐의들에대해 부정하며 지속적으로 징징거림을
유지했다.
부패한 교도소를 자신의 손바닥안에 놓고 굴리다 다른 나라에서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다시 수감되기를 자처했다.
그 방법은 가히 놀랄만한 방법이었다.
찰스 소브라즈는 대범하고 뻔뻔하고 자기애로 똘똘뭉친 인간이었다.
네팔에 수감되어있는 그는 노인법으로인해 자신을 가석방해야한다며
법원에 탄원했다.
이 노인법은 노인을위한 선고 포기 조항이라고 한다.
또 다른 조항으로는 범죄의 중대성을 고려해 75세가 넘은 이들을 보호센터로
옮길수있는 규정이 있다고 한다.
참 어지간히도 뻔뻔한 인간이다.
그가 현재 나이를 먹고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자신의 생계를 위해 손쉽게 거둔 살인범에게 어디까지의 자비가 허용
되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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