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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호러 하우스

사랑의 배반 유니콘 킬러 아이라 아인혼




1970년 아이라 아인혼은 환경 운동가로 4월 22일을 지구의 

날로 지정하기 위해 노력하던 환경 운동가라고 하는데

일부 이 활동을 했던 운동가들은 이의를 제기 했습니다.  


그는 지지자중 일부에게 유니콘이라고 알려져있는데 

독일어로 그의 이름 아인혼을 번역하면 유니콘이 된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 덕분인지 다른 그룹과 함께 일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릴수 있었습니다. 


펜실베니아에서 공부를 했고 텍사스 출신의 홀리 매덕스와 

5년간 사귀 고 있었습니다. 


홀리 역시 운동가로 그녀는 여성을 위한 운동을 했으며 

당시 모든 시선을 받던 아인혼에게 끌렸고 그와 만나게 됐지만

아인혼은 그녀를 전 여자친구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대했고

육체적인 학대를 가했습니다. 


홀리는 아인혼의 폭력에 질려 뉴욕으로 이사왔고 그곳에서

새로운 남성을 만난뒤 그와 관계를 끊기로 마음 먹습니다.


아인혼은 자신의 일에 매진했고 승승장구해 가는듯

했으나 여자친구 홀리가 그와 관계를 끝내고 짐을 싸 

뉴욕의 새로운 남자친구에게 가려는 사실에 분노 했습니다. 


 그녀가 이제는 자신의 곁에 없을것이라는 

사실에 비통함에 빠졌지만 곧 홀리가 자신의 아파트에 

돌아올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홀리에게 그녀의 물건을 와서 싹 치우라고 요구했고 

홀리는 자신의 새 남자친구와 그의 집에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오는것에 대해 얘기 한 뒤  아인혼의 아파트로 향했습니다. 


1977년9월9일 홀리는 마지막으로 목격되었고 그 후 

그녀는 실종 신고가 접수 됐습니다. 

아이혼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이 심문을 했는데 

그 날 홀리는 지역의 협동 조합으로 부터 물건을 받으러

간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별다른 증거도 없었기에 경찰은 아이혼을 풀어 주었습니다.

홀리의 가족들 역시 사립 탐정을 고용해 조사를 했지만 

그들 또한  뚜렷한 증거를 찾아 낼수 없었습니다.

 

사건이 있고 18개월 후 아인혼의 아파트 아래 집 부엌으로 

천장에서 갈색 액체가 흘러내려왔고

그것에  냄새에 대해 관리인에게 불평하자 

아파트 관리인은 수상함을 느끼고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은 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아인혼의 집에 출동합니다. 


집을 수색하던 경찰은 아이혼의 집 옷장에서 홀리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홀리는 트렁크 안에 넣어졌지만 그전에 심하게 구타당한

것으로 보여졌으며 스티로폼 과 공기청정제는 부분적으로 

미라가 된 시신에서 나는 냄새를 가리려는데 사용된것

이었습니다.


또 그곳에서 그녀의 가방과 핸드백 운전 면허증 사회 보장카드

등이 함께 나왔습니다.


 그녀의 두개골에서 여섯개의 상처를

발견했고 그녀가 트렁크에 담길 당시 의식이 있던 상태였다는

것을 알아 냅니다.


그는 홀리의 살인 혐의로 바로 체포되었습니다 

하지만 보석금을 내고 재판이 시작 될때까지 집으로 

돌가갔습니다. 

보석금을 걸었던것이 큰 실수였다면 실수였습니다

1981년  재판이 시작 될때쯤 그는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갑니다. 


그가 없는 재판이었지만 법원은 재판을 시작 했고 

1993년 그는 홀리의 살해 혐의로 가석방 없는 감옥

생활이 선고 됐습니다. 


한편 유럽으로 도피한 아인혼은 스웨덴 여성과 

결혼했고 16년간 유럽을 여행합니다. 

1997년 아이혼은 유진 말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는것이 드러났고 강제 송환이 

시작 됩니다. 


프랑스에서는 사형이 선고도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

없이 피고인을 인도하지 않기에 미국에서 살인 사건

당시 펜실베니아에는 사형이 없는것을 확실히 밝혔지만

프랑스 법과 유럽 인권 재판소는 또다른 이유를 댑니다. 


이번에는 그가 없이 재판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다시 

재판을 해야한다며 인도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이 결정은 미국의 시민들이 화를 냈고 35명의 의회 

의원들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에게  본국 송환에 

개입하지 말라는 서한을 보냅니다.


펜실베니아 입법부는 1998년 아인혼이 다른 재판을 

요청할수 있는 법안을 통과 시키지만 이 법안은

비난을 받았고 이떄를 틈타 아인혼의 변호사는 프랑스

법원이 인도를 거부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미국이 또 한번 분노하는데  프랑스에서 

아인혼을 경찰 감독하에 감옥에서 풀어 줬다는 것입니다. 


아인혼의 지지자들이 미국의 사법부가 그를 불공평하게 

대우 했고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할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래저래 많은 걸림돌들이 있었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인도 절차가 시작됐습니다.

 2001년 7월 20일 프랑스에서 그를 다시 재판을

받더라도 사형을 내리지 않을것을 약속 받고 미국으로 

그를 송환시킵니다. 


그가 송환되기전 아인혼은 프랑스 자신의 집에서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마음을 바꿔먹게 됩니다.

그 이유는 칼로 목을 긋는것은 그다지 예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새로이 재판을 시작한 아인혼은 홀리가 CIA에게 살해를

당했다고 주장합니다. 


2002년 10월 17일 총 4주 동안의 재판에서 그는 홀리의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가석방없이 감옥

생활을 선고 받았습니다. 


자신의 성격하나 제어를 못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위해 

대중앞에 나서고 무언갈 지키려고 했다는것이 우습습니다. 


자신이 택한 자살 방법이 그다지 예쁜 모습이 아니기에 

관뒀다는 말은 진짜 어이가 없지만 사실은 단지 겁이 

낫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최근에 데이트 폭력 이나 헤어진 연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범죄 사건들이 늘어가고 있는데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그렇게 무참히 폭력을 가하거나 살해를 할수있다는게 

놀랍고 이런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세상이 흉흉해져

가고 있다는게 슬퍼집니다.


물론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기에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사랑을 하는 것이겠지요. 


한때 서로 사랑했던 연인을 잔인하게 살해 하고 방안에 

유기해두며 경찰에 들키자 CIA 에게 죄를 돌렸던 

비겁자 유니콘 살인마 아이라 아인혼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