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홀로웨이 실종 사건
나탈리의 부모님은 1993년 이혼 했으며 2000년 엄마가 한 사업가와 재혼을 하며 앨라배마 마운틴 브룩으로 이사했습니다.
나탈리는 밝고 사회성이 좋은 아이로 학교 치어리더 팀 및 기타 활동의 회원으로 활동 합니다.
또한 그녀는 머리도 좋아 대학교 장학금을 받아 의학을 전공할 예정이었습니다.
나탈리는 기다리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됐고 친구들과 아루바 시니어 클래스 여행으로 졸업 여행을 떠나기로 했으며 부모님 역시 동의 했습니다.
2005년 5월 26일 약 100명의 학생들과 아루바로 향합니다.
마운틴 브룩 고등학교 시니어 수업은 5일 동안 이루어지며 아루바에서만 머물게 되어있었습니다.
학생들은 4명의 보호자 아래 타지에서 지내게 됩니다.
(8~10명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탈리는 참 신중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친한 친구가 무면허로 그녀의 차를 운전하기를 부탁했을때 십대의 어린소녀는 그것을 거절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어쩌면 십대에 아주 친한친구의 설득에 넘어 갔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사소한것에도 세심함을 보였던 나탈리였지만 단 한번의 실수로 그녀의 인생은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학생들은 각방에 룸메이트가 있었고 나탈리는 그녀의 친구들과 스노클링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뒤 다른 학생들과 한껏 차려입고 호텔에서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곤 했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인 토요일 밤 대부분의 학생들은 저녁을 먹고 해변에 있는 바에 가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나탈리 역시 친구들과 바에서 시간을 보내다 한 소년을 만나게 됩니다.
조란 반 데르 슬루트 는 네덜란드에서 1990년대 아루바로 이주했으며 인터내셔널 스쿨의 명예 학생으로 축구와 테니스에서 아주 뛰어난 운동 선수 였습니다.
둘은 서로에게 매료 됐고 나탈리의 동료들은 그에 인상을 좋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나탈리는 조란과 그의 친구들 두명과 함께 클럽을 떠납니다.
다음날 공항에서 급우들과 친구들은 그녀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호텔로 다시 돌아온 그들은 맡겨져있는 그녀의 짐과 여권을 발견했습니다.
나탈리의 부모님은 소식을 듣고 바로 아루바로 왔고 자원봉사자 두명과 함께 섬과 주변 해역등을 수색했지만 그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들은 조란을 기억해 냈고 나탈리의 엄마에게 사실을 말합니다.
엄마는 그의 집 주소를 알아냈고 개인적으로 먼저 그들의 집을 찾아갔지만 그들은 그녀를 만나는것을 거절합니다.
그녀는 앨라배마에 도착한 8명의 나탈리의 친구들에게서 여러가지 정보를 들었고 조란의 집 앞에서 큰 목소리로 외치며 그녀에 대해 기억나는 정보를 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조란의 가족은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나탈리의 엄마는 그녀가 납치 당했다고 믿었고 경찰과 FBI에 연락해 딸이 아루바에서 납치 됐다고 말했습니다.
아루바의 경찰들은 섬을 수색했고 5월 30일 나탈리와 함께 있었던 조란과 그의 두 친구들을 경찰이 체포 합니다.
심문에서 이들은 나탈리를 그녀가 머무는 호텔에 데려다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검은 셔츠를 입은 남자가 나탈리에게 접근한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호텔 경비원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그녀를 두고 호텔을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조란의 친구 칼포형제들은 한달 정도 감옥에 구금 되었으며 조란은 그들보다 조금 더 오래 구금 됐습니다.
2005년 6월 1일 미국의 언론은 나탈리의 사건을 중점으로 다루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조란의 체포 이후 2005년 6월 5일 호텔 경비원 2명 닉 존 과 아브라함 존스를 살인과 유괴 혐의로 체포 합니다.
이들은 여성을 찾아 호텔 주변을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한명은 이전에 범죄 경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탈리의 실종 당일 그들은 근처에 있지 않은것으로 확인됐고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기에 풀어 주었습니다.
너무나 증거가 없는 실종 사건에 경찰들은 곤란해 하던 중 다시한번 단서들을 모았고 2005년 6월 9일 조란 과 그의 칼포 형제들을 다시 체포 합니다.
경찰은 그들의 집을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체포 된후 두명이 추가로 체포 되었는데 스티브 와 조란의 아버지 였습니다.
스티브는 칼포 형제의 알리바이에서 이름이 언급되었기에 체포됐습니다.
둘은 알리바이가 있었고 곧 풀려 납니다.
여전히 경찰은 조란과 칼포 형제가 나탈리의 실종에 관련이 있다고 믿었지만 9월 14일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와 아루바 합동 항소 법원은 그의 여행을 포함한 모든 제한 들을 철회 했고 혐의 또한 삭제 됩니다.
조란은 대학을 가기 위해 네덜란드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나탈리가 사라진지 거의 1년이 지나고 경찰은 수사를 더이상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조란은 자신의 무죄를 알리기 위해 각종 언론의 인터뷰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2006년 3월 1일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전에 자신이 했던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그는 사건 당일 밤 칼포 형제는 조란과 나탈리를 해변가에 내려주었고
나탈리와 해변에 함께 있다가 그녀를 혼자 있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그녀를 호텔에 데려다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2006년4월 경찰은 조란을 체포 합니다 그러나 역시 별다른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는 풀려납니다.
같은 달 나탈리의 아버지는 그녀의 사건에 관한 책을 냈고 책에는 그녀의 사건 조사에 관한 내용과 그의 추측 과 단서들이 적혀있었습니다.
2007년 6월 마치 이에 대적이라도 하듯 조란이 자신의 책을 냅니다.
그날밤에 있었던 일이 담겨 있으며 자신의 무죄를 유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2007년 11월 21일 조란과 칼포에 형제가 체포 됩니다.
나탈리가 실종 당일날 죽었다고 인터넷 채팅에 글을 쓴것에
그들을 체포 한것이었지만 이들을 기소할만한 충분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11월 30일 칼포 형제가 석방 됐고 12월 7일 조란이
석방 됐으며 경찰은 사건을 종결한다고 선언했습니다.
2008년 2월 위장한 네덜란드 언론인 피터 드 브리가 조란이 나탈리의 시신을 처리 했다는 고백을 받아 냅니다.
사건 당일 나탈리는 너무 많이 취해 있었고 해변가에서 발작을 일으키다 자신의 품에서 사망했으며 친구들에게 시신을 바다에 처리하도록 도와달라고 했다는 내용이 었습니다.
하지만 이 비디오는 합법적으로 나온것이 아니라 판사는 경찰이 그를 체포 하려는 것을 거절합니다.
2008년 11월 25일 조란은 인터뷰에서 또 말을 바꿉니다.
이번에는 나탈리를 10000달러에 노예로 팔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탈리를 보트에 태운뒤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 보았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 다시 돈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상한 남자 조란은 다른 언론에서 이 이야기는 만들어낸 것이라고 다시 말을 바꿉니다.
2009년 4월 나탈리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나탈리 라는 책을 냈고 그것이 TV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방영 되며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시 이 정신이 이상한 남자가 나타 납니다.
2010년 3월 조란이 나탈이의 엄마에게 연락해 그녀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 알려준다고 말하며 250000달러의 보상을 요구했고 그는 아루바 경찰에 의해 만달러를 받았습니다.
그가 정말 시신의 위치를 알려주었을까요 ?
아니요 그는 가족에게 거짓말로 위치를 알려주었고 그것으로 기소 당했지만 체포전에 페루로 도망 갔습니다.
2010년 5월30일 조란은 21세의 대학생 스테파니를 살해합니다.
그녀는 호텔 방에서 발견 됐고 조란은 다시 칠레로 도망 쳤습니다.
페루 경찰은 그를 파키스탄으로 강제 송환 했고 살인 혐의로 기소 됩니다.
페루 감옥에서 2년을 보낸 후 조란은 스테파니의 살인을 고백했고 그의 변호사는 똥같은 변호를 합니다.
나탈리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경험한 극심한 심리적 외상 때문에 이같은 살인을 저질렀다는 변론 이었습니다.
변호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란은 28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잠깐의 헤프닝도 벌어집니다.
펜실베니아에서 아루바로 휴가를 보내러 온 한 부부가 스노우쿨링을 하며 바다 안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찍혔고 이것이 나탈리일수도 있다는 말에 그곳을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없었으며 경찰은 그냥 산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조란이 페루의 재판에서 선고 되기 전날 나탈리는 법적으로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나탈리의 가족과 그의 친구들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는데 28년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조란에겐 그런것따윈 없었습니다.
그는 감옥안에서 사랑을 찾았고 2014년 7월 4일 페루의 한 여성과 결혼을 합니다.
이들은 여성이 감옥의 다른 친척을 방문했을때 만났습니다.
그의 변호사는 그가 페루의 형이 끝나면 미국으로 송환되는것을 피하기 위해 결혼을 한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말합니다.
2014년11월 조란은 감방에서 동료들에게 여러 차례 칼로 찔렸습니다.
하지만 교도소장은 조란이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을 얻기 위해 자초 했다고 말합니다.
그의 아내는 피묻은 셔츠를 몰래 밖으로 빼돌려 언론에 알렸습니다.
2015년 5월 새로운 증인이 나왔습니다 한 건설 현장에서
조란이 죽은 나탈리를 안고 있었으며 그가 다시 그곳에서
나왔을때 시신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마약 거래에 관련된 범죄자 이기에 앞으로 나설수
없었다고 설명 했습니다.
나탈리의 아버지는 그의 증언을 듣고 조사를 시작했고
메리어트 호텔의 스파이글라스 타워 의 건설 현장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루바 경찰들은 메리어트 호텔에 요청 했지만 2005년 5월 30일에 그곳에서 건설 활동은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나탈리의 아버지는 경찰 수사에 동의 할 수 없었습니다.
2005년 6월에 찍은 구글 어스의 위성 이미지에서 건설 현장일수있는 구조물을 찾아냈습니다.
또 2005년 2월에 건설 공사가 있었다는 정보가 있었지만
경찰은 더이상 조사하지 않습니다.
2016년3월 한 기자가 조란과 인터뷰에서 카메라를 숨기고 인터뷰를 합니다.
거기서 조란은 나는 항상 경찰에게 거짓말을 했고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았어 나는 경찰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었어 어렸을때 나는 모든것을 말하지 않았고 경찰은 그들이 무엇을 해야하는 몰랐어 라는 말을 합니다.
나탈리의 관련 질문에 조란은 나는 유죄야 내가 저지른 모든 것을 받아들일수 있다 라고 말하며 나탈리를 죽인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의미심장한 말들은 무얼 뜻하는것일까요?
그리고 스테파니의 살인은 극심한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것이 아니라 코카인에 의한 살인이라고
인정합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경찰에 쓸모가 없습니다.
아루바에서는 고백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손으로 쓰고 서명을 해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나탈리의 사건은 해결하지 못했고 가족들은 그녀의 사건을 풀때까지 슬픔을 간직한채 살아가야 할것입니다.
조란은 정말 범인이던가 아니면 그저 단순히 관심에 목마른 정신 이상자일 것입니다.
시신의 위치를 거짓으로 말하고 그것도 모자라 보상금까지 챙기는 그의 모습에 소름이 돋습니다.
여러분들이 조란을 보기에 어떠신가요.
그가 주장하는것처럼 나탈리의 실종과
관련이 없을까요 ? 아니면 거짓말을 잘하는 진짜 살인범일까요 ?
나탈리의 사건은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기억되고 있습니다.
범인이 꼭 밝혀지고 그녀의 유골이라도 수습하여 가족들의 악몽이 끝났으면 싶은 나탈리 홀로웨이 실종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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