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찾다가 턱에 문신을 한 옛날 여성 사진을
발견해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이런 일도 있었구나
싶어 영상으로 만들게 됐습니다.
올리브 오트먼은 1837년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850년 몰몬교였던 올리브의 가족들은 그녀가 14세때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아버지는 제임스 콜린 브루스터의 가르침을 따르는 몰몬교
집단인 브루스테라이츠 였습니다.
여기서 잠시 브루스터라이츠 란 1848년 제임스 C 브루스터 와
하젠 알드리치가 설립한 교회에서 발간하는
정기 간행물에 브루스터가 얻은 계시가 항상 같이 실렸는데
그때문에 사람들은 브루스터가 예언자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따르는 사람들을 브루스테이츠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브루스터는 몰몬교의 진정한 정신이 유타보다는 캘리포니아에
있다고 믿었고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됐으며 그를 따르던
그룹이 함께 였습니다.
이들은 다른 그룹과 약간의 의견차로
올리브 가족은 그룹보다 훨씬 앞서서 가족들끼리만
길을 나서게 됐습니다.
여행 4일째 오트만 가족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에 의해 공격
받게 됩니다.
당시 아리조나 지역은 상당히 위험한 지역으로 결국 그의
가족들은 야바파이 인디언에게 포위 당했고 이들은 오트만의
아내와 7명의 아이들중 4명을 살해합니다 아이들중 한명인
로렌조는 살아 남아
뒷따라 오던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됐습니다.
그의 13세딸 올리브와 8살 메리 앤이 실종 됐고 납치된것으로
의심됐습니다.
원주민 부족은 올리브와 메리를 노예로 사용하며
이들에게 가혹한 대우를 합니다 음식으로 이들을 괴롭혔고
구타는 기본이었으며 굶는 것은 거의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들 부족이 담요와 말을 구하기 위해 모하비 부족과 거래를
할때 이들은 두 소녀들을 거두어 노예가 아니라 가족으로
받아 들입니다.
이들은 부족원으로써 턱에 문신을 새겨넣게 됩니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노예의 표식이라는 말도 있지만
일반 적으로 다른 부족원과 문신이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1855년 심한 가뭄으로 인해 동생 메리 앤은 결국 굶어 사망
하게 됐습니다.
모하비 인디언들 사이에 백인 여성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고
사람들은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 올리브를 돌려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결국 나중에 올리브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것에 동의 했으며
이들은 모하비 복장을 벗고 서양식 옷을 입기를 요청했습니다.
모하비 부족은 상의를 모두 탈의한 복장이었습니다.
그녀는 살아 남은 형제 로렌조와 다시 만나게 됩니다.
팔과 턱에 문신을 한 올리브는 사람들 사이에 금새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올리브는 부족과 떨어지며 우울증이 심해졌고 평생을
그 치유법을 찾아 다녔습니다.
아무래도 그녀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한꺼번에 몰려
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가족이 몰살 당하는것을 목격했고 그 후에는
끔찍한 학대를 당하며 노예 생활을 하고 모하비 족과
만나며 이제 좀 마음이 편해지는가 했더니 다시 자신의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만 한다는것이 쉽지만은 않았을것이고
결국 이 모든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그녀에게 나타났을것같습니다.
1857년 로얄 B스트라톤은 올리브와 메리앤의 원주민의
삶에 관해 책을 썼고 올리브와 로렌조는 그것을 홍보
했습니다.
1865년 올리브는 존 B 파이어필드와 결혼을 했고 남은
책의 사본들을 모두 불태워버렸습니다
이들은 딸을 입양해 키우며 살다가 1903년 65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됐습니다.
올리브 처럼 문신은 하지 않았지만 신시아 앤 파커
역시 아메리칸 원주민 코만치 부족에게 납치를
당했던 여성이었습니다.
그녀가 9~10 살 사이에 텍사스로 이사했고 1836년
5월 19일 코만치 전사들이 군대를 공격했고 주민
몇명은 살해 당했습니다.
그때 5명을 납치해 돌아갔고 나머지 4명은 다시
돌려 보내주었지만 신시아는 인디언들과 생활하며
코만치 부족의 일부가 되게 됩니다.
25년동안 그들과 생활하며 백인의 삶은 잊어버렸고
코만치가 됐습니다.
캐나다 강에서 코만치와 신시아는 레오나드 지
윌리엄스 와 함께한 무역 파티에서 윌리엄스가 그녀를
풀어줄것을 제안했지만 부족의 장로는 그것을 거부 했습니다.
그녀를 부족의 일부로 받아들여 코만치 전사와 결혼을
시켰고 그녀는 페타노코나 와 결혼하여 두명의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1840년 중반 그녀의 동생은 신시아에게 백인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한다며 떠나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1860년12월 18일 텍사스 레인저스는 피어스강 에서
코만치 캠프를 공격했고 이 급습에서 세명의 인디언을
체포 합니다.
그들 중 한명은 신시아로 아이와 함께 강제로 서양인들의
사회에 돌아가게 됐으며 몇번이나 인디언 부족에게 돌아가려고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그녀의 서양 가족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고 나중에
헨더슨 카운티 부근으로 이사해 살다가 1870년이
지나고 사망합니다.
아메리칸 원주민들에의한 납치 였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그들이 진정한 개척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 보면 개척자라고 부르는것도 맞는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영토 싸움의 희생양이 된것으로
보입니다.
아메리칸 원주민의 올리브와 신시아 납치 사건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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