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건은 1953년 미국의 역사상 가장 큰 몸값을 지불했던
납치 사건 입니다.
칼 오스틴 홀 과 보니 에밀리 브라운 헤디는
마약중독자로 큰 돈을 마련하기 위해 무서운 계획을 장기간에
걸쳐 짜냈습니다.
1953년9월28일 오전 10시 55분쯤 캔자스 시티에 있는
작은 카톨릭 학교에 바비의 이모라는 사람이 나타나 그곳의
수녀 에게 바비의 엄마가 심장 마비로 쓰러져 세인트 메리
병원으로 이송 되었다고 알려 줍니다.
수녀의 기억에 따르면 바비는 주저없이 그녀에게로 걸어 갔다고
말했습니다.
이 여성은 바비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함께 택시에 오릅니다.
이들이 떠난 뒤 11시 30분경 학교의 한 수녀가 바비의 집에 전화해 바비의 엄마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때 수녀와 엄마는 그들이 진짜 이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비의 부모님은 서둘러 경찰에 알렸고 경찰서장은 FBI에
알립니다.
택시 운전 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당일 11시 직전에 학교에서
설명한 여성과 비슷한 사람을 태우고 학교에 도착했으며
그녀는 자신이 금방 돌아올테니 기다리라고 말한뒤 6분 뒤에
한 소년과 택시로 돌아옵니다.
이들은 캔자스 번호판이있는 1952 혹은1953 파란색 포드 뒤에 멈추게 한 뒤
내렸고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목격이 됐습니다.
바비가 납치 된지 몇시간 후 부부는 아이의 첫 번째 몸값에
관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오후 6시30분 우체국 우편으로 발송됐으며 60만 달러의 요구를 적었고 20달러와10달러짜리 지폐를 더플 백에 넣으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에따른 대가로 24시간 안에 바비를 무사 귀환을 시킬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9월29일 오후 9시30분 도착한 편지 봉투 안에는
바비가 착용하고 있었던 목걸이가 담겨 있었으며 이번 편지에도
역시 6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하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또 바비는 건강하지만 약간 향수병에 걸려 있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락으로 바비의 집에 10월5일 새벽
한시에 전화가 걸려 옵니다.
이들은 납치범들이었고 60만 달러의 몸값을 받았으며
그들의 아들이 24시간 내에 무사히 돌아갈 것이라고 바비의
아빠에게 확신시켰습니다.
사실 이 잔인한 납치범들이 바비의 부모에게 말 한 것은
전부 거짓말이 었고 바비는 납치된 직후 살해당하고
미주리 주에 있는 헤디의 집 근처에 묻었둔 뒤 였습니다.
그리고선 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이 무사히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까지 시킨 것 입니다.
이들에겐 두려움이란 것 조차 없는 것일까요.
돈을 넘겨받은 이 범인들은 1953년10월5일 메탈 슈트 케이스를
구입하여 더플 백에 들어있던 돈을 그곳에 옮겨 담고
더플 백은 사우스 세인트 루이스의 한 구덩이에 버렸습니다.
칼 홀은 술에취한 보니를 유혹해 자신이 빌린 아파트로 데리고
가 관계를 맺고 보니가 바로 잠이 들자 그는 그녀의
지갑에 돈 2 천 달러를 넣어두고 그곳에 그녀를 버리고
떠납니다.
칼 홀은 비싼 호텔로 숙소를 옮기고 매춘부를 불러 돈을 썼고
그 밖에도 돈을 물 쓰듯 쓰고 돌아다니자 주변 사람들이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바비의 사건은 보도 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의심을 하던 사람중에 한명이 결국 그를 경찰에 신고 합니다.
경찰은 호텔 방에서 숙취를 겪고 있는 칼 홀을 체포했으며
25만 달러 이상을 발견했습니다.
FBI요원은 칼 홀의 증언으로 바비의 시신을 발견 할 수
있었으며 아이를 찾은 부모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칼 홀과 보니는 자신들이 아이를 납치한 것은 맞지만
아이를 살해한 것은 발뺌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 싸움이었고 결국 칼 홀은 모든 것을 자백
했습니다.
납치 후 몇시간 만에 아이를 살해 했다고 아주 평온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선 가족들에게 아이가 살아 있다며 가학적인 고문을
한 것입니다.
바비는 차안에서 목이 졸렸고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공격하는 어른을 때리고 저항했습니다.
칼 홀은 이런 저항에 대비를 했다고 조사관에게 말합니다.
코트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총을 꺼내 바비의 심장을 향해
쏘았고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머리에 총을 쏴 살해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비닐 봉투에 아이를 넣었고 보니의 집 근처에 바비를
묻었다고 자백 합니다.
1953년11월16일 이 두 사람은 재판을 받았고 배심원단은
11월19일 유괴 및 살인 혐의로 둘을 가스실로 보내라고
결정 했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1953년12월 18일 사형 선고가 내려 졌으며
미주리의 가스실에서 함께 처형 됩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칼 홀은 사실 방에 모든 돈이
다 있었다고 주장 했고 돈을 수거하여 가지고 왔던 경찰은
당시 25만달러 정도만 발견 했다고 주장합니다.
돈을 제출 했던 중위는 6시간 동안 심문을 받았으며 위증죄로
기소 되었습니다.
돈에 관련된 두명의 경찰중 한명인 숄더스는1954년
4월15일 3년을 받았고 돌란은 3월31일 유죄를 받고 2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결국 없어진 돈의 행방은 알 수 없게 됐고 이 사건은 미국에서
당시 최고의 몸값 사건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이 유괴범들이 너무 잔인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아이를
이미 살해해 두고선 마치 살아있는 것 처럼 부모를 설득
시키고 최악의 경험을 하게 만들었던 점 입니다.
문득 영화 그놈목소리가 떠올랐던 사건입니다.
참 이해가 안됩니다 ..어떻게 그 작디 작은 아이를
살해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할까요.
너무나 잔인하고 잔인했던 미국에서 악명 높은 사건으로
기억되는 칼 오스틴 홀 과 보니 에밀리 브라운 헤디 의
납치 살해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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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MacLeod의 Air Prelude은(는)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라이선스(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에 따라 라이선스가 부여됩니다.
출처: http://incompetech.com/music/royalty-free/index.html?isrc=USUAN1100337
아티스트: http://incompet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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