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는 미국 미주리주의 역사에서 가장 긴 체포 영장을 발부
받은 살인범의 이야기 입니다.
샤론 엘리자베스 킨은 1960년에 일어난 2명의 살인과 관련이 있습니다
샤론은 1939년11월30일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태어납니다.
그녀가 중학생이었을때 가족들은 워싱턴으로 이주 했지만 샤론이 15세가
됐을때 다시 미주리주로 옮겨오게 됩니다.
1965년 16세가 된 샤론은 대학생 제임스 킨을 교회에서 만난 뒤로
데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샤론은 독립을 원했기에 대학에 가 있는 제임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자신의 임신을 알리는 편지 였습니다.
샤론과 제임스는 결혼을 하는데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며
새로운 사실이 드러 납니다.
그녀가 실은 이미 결혼한 전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전 남편은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어찌됐든 그럼에도 그들은 격식있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립니다.
제임스는 결혼식이 끝나고 대학이 있는 유타로 돌아가 다시
학업을 매진 합니다.
그러나 가을학기에 그는 다시한번 공부를 멈추게 됩니다.
둘은 인디펜던스로 돌아와 직장을 잡았고 일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샤론은 아기 돌보기와 가게 관리 , 제임스는 벤디스 항공의 전기 엔지니어로
일하게 됩니다.
아시다 싶이 둘의 결혼의 계기는 임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정말일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그에게
아이가 유산 됐다고 합니다.
1957년 그들에게 작은 천사가 다시 찾아와 다나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여기까지보면 행복해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샤론은 소비에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예를 들자면 돈 100을
벌면 110만원을 썼습니다.
이 부부는 처음엔 부모님 집 옆에 있는 임대 주택에 살았고
두번째는 목장에서 살정도로 그다지 여유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제임스는 야간 근무를 했고 샤론은 쇼핑을하며 남자들을 만납니다.
부부가 둘째 아이를 가졌을 당시 샤론은 고등학교 동창인 존과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었습니다.
제임스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사치부리고 다니는 모습에 질렸을테고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의심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1960년 3월에 그는 부모님에게 자신이 이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상의
합니다.
샤론은 제임스에게 그가 집과 양육권을 그리고 1000달러를 준다면
이혼에 동의하겠다고 선심쓰듯 말했습니다.
이때 이혼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들은 독실한 몰몬교 신자였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라고
설득 시킵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샤론 역시 결혼 생활 유지하길 어느 순간부터 원했는데
그녀의 애인 존의 말에 따르면 남편을 죽이거나 그것을 할 누군가를 찾기
위해 1000달러를 자신에게 제안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생명보험 수당 때문이겠죠.
나중에 존은 그녀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3월19일 저녁5시 30분 샤론은 남편이 자고있던 침실에서 총소리를
들었습니다.
샤론이 방으로 뛰어들어가보니 아빠의 옆 침대에서 두살 다나가 22구경
권총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고 제임스의 머리 뒤에서 흘러 내리는 피
역시 보았습니다.
샤론은 서둘러 경찰을 불렀고 제임스는 병원으로 이송되지만 사망하고
맙니다.
경찰은 권총에서 지문을 채취할 수 없었고 잔여물 검사는 아이도
샤론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과 이웃 몇명은 제임스가 종종 다나에게 총을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는 것을 경찰에게 말해 줍니다.
그리고 경찰은 조사에서 다나가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는 것을 확인 했습니다.
그렇게 경찰은 별다른 증거도 없이 우발적 살인이라고 믿었습니다.
샤론은 증거물로 수거된 권총을 찾으려고 했으나 경찰은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
그녀는 나중에 남자 친구에게 자동 권총을 선물 받았는데 남자친구가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했다고 하자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록하길
요청 합니다.
여차저차 제임스의 사건 수사는 종결 됐고 제임스는 땅에 묻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샤론은 29000달러의 생명수당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 합니다.
원터 존스와 그의 아내는 고등학교 졸업후 결혼 하고
결혼 직후 해병대에 입대 했으며 서부 해안으로 이주 했습니다.
군에서 전역한 부부는 중서부로 돌아와 두 자녀들과 함께 정착 했습니다..
그러던 중 부부는 남편의 자동차를 팔게됐고 그 차를 샤론이 사게 됩니다.
그렇게 둘은 바람을 피우기 시작 했습니다.
샤론은 존스에게 워싱턴 여행에 동참하길 원했지만 그는 거절했고
그녀가 돌아왔을때 자신이 임신했으며 아이의 아빠라는 당신이라며
통보를해 왔습니다.
샤론은 존스가 아내와 이혼할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존스는 아내가 아닌 샤론에게 이별을 통보 합니다.
5월26일 샤론은 존스의 사무실에 전화해 그의 아내에게 존스가
자신의 여동생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그날 저녁 존스의 아내와 만나기로
약속 합니다.
바로 그날 존스는 아내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에 경찰에
실종 신고를 냈으며 그녀를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카풀을하는 아내의 친구로부터 아내를 만나고 싶어하는 익명의
여성으로 부터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친구는 아내를 인디펜던스의 한 거리 모퉁이에 내려 주었고 차에 타고
있던 다른 여성들이 다른 차에서 아내를 기다리던 여성을 목격 합니다.
그들은 그 차의 여성을 알아보진 못했지만 존스에게 설명을해줬습니다.
존스는 그 의문의 여성이 의심스러워졌고 샤론에게 자신의 아내를
봤는지에대해 질문 합니다.
샤론은 자신이 존스의 아내를 봤는 것을 인정했고 불륜 사실에대해
알리기 위함이었다고 대답 했습니다.
그녀의 말에따르면 아내와 이야기를한뒤 그녀를 존스 집 근처에
내려주었는데 그녀는
1957년산 녹색 포드에 타고 있던 의문에 남성과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존스는 샤론에게 아내에대한 이야기를 좀 더 상세히 듣기 위해 그녀를
만났고 나중엔 목을 쥐며 협박까지 합니다.
존스는 아내를 찾는 것을 도와주길 요청했고 샤론과 남자친구 존이 수색을
돕습니다.
한참 아내를 찾아 다니던 중 샤론과 존은 한 여성의 시신을 발견 하게 됩니다.
그들이 시신을 찾은 곳은 존이 제안을 했던 지역으로 종종 그들이
데이트를 했던 곳이었습니다.
그 시신은 곧 존의 아내 패트리샤인 것으로 확인 됐습니다.
그녀는 22구경 권총을 네 발 맞았고 머리에 총상이 가장 치명 적이었습니다.
총상의 흔적등으로 그녀의 사망 시각이 5월 27일 오후 9시경으로
조사가 됩니다.
경찰은 샤론과 존 그리고 존스를 심문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날인 5월28일 심문을 받게 됩니다.
존과 존스는 샤론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진실인 것으로 조사 됩니다.
그들의 심문을 지속하며 다른 수사관들은 범죄 현장을 조사하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아내 패트리샤를 살해한 무기인 총과 총알을 찾으려고 반복적으로 확인
했습니다.
그리고 패트리샤가 발견된 땅에 묻혀있던 총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총은 찾지 못했습니다.
패트리샤의 장례식이 있던 날 샤론은 살인 사건으로 집에서 체포
됐습니다.
수사관은 검사에게 샤론의 두번째 살인에 대해 고려해달라고 부탁 합니다.
경찰은 패트리샤의 죽음에 사용된 22구경 권총이 샤론의 남편 사망에
쓰인 총과 같을 수도 있다는것도 생각했지만 그 권총은 여전히 증거물로
경찰서에 보관중이었습니다.
곤란을 겪던 중 샤론이 받은 22구경 권총에 대해 그녀의 친구가 입을
열게 됩니다 .
경찰은 그녀의 집을 수색하지만 권총을 찾을 수 없었고 권총의 행방을
그녀에게 물었지만 샤론은 워싱턴 여행 당시 잃어버렸다고 대답 합니다.
재판을 시작하기 전 그녀의 임신으로 인해 잠시 지연되었고 1961년
1월 16일 아이를 낳은 뒤 다시 시작 됩니다.
패트리샤의 살인 사건은 한시간 반의 심의 끝에 너무 많은 허점이
남아 있다고 언급 되며 무죄라고 판결 됐습니다.
그리고 판결이 난 그날 그녀는 남편 제임스의 살해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기 위해 다시 감옥으로 돌아 갑니다.
그녀의 기소된 증언들에 따르면 샤론의 결혼 생활은 제임스가 사망
할 당시 끝장난 상태였고 샤론의 불륜이 그 원인이었으며 남편의
생명보험금 수혜자가 아내였다는 점들이 었습니다.
그렇게 남편 살해에 대한 재판은 5시간 반의 심의 끝에 1962년
1월11일에 유죄를 받게 됩니다.
1963년 10월 청문회는 새로운 재판을 위해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냈고
그녀의 두 번째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그사이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그녀의 엄마의 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이 재판은 1964년 3월 23일 시작됐고 세번째 재판 그리고 네번째까지
이어 집니다
네번째 재판은 1964년 10월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녀는 남자친구로
추정되는 프란시스 사무엘 푸글리세와 멕시코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녀는 이름까지 바꿔가며 여행을 하는데 나중엔 결혼식을 하기 위해
멕시코에 왔다고 변명을 합니다.
64년 9월18일 국경을 넘은 커플은 호텔에 남편과 아내로 등록했고
위험할지도 모른다며 샤론은 권총을 샀습니다.
그러나 그 총은 아마도 그녀가 처음부터 챙겼던 페트리샤를 살해한
그 총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그날밤 혼자 호텔방을 나섰다가 프란시스코 파라데스 올도네즈를
만났고 그의 방으로 따라 갑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사진을 보기 위해 따라갔다가 그가 성폭행을하려해
총을 쐈다고 합니다.
자신은 절대로 올도네즈를 살해할 의도가 없었고 놀라게 할 의도였으나
총알이 나와 그의 심장에 박혔다고 말했습니다.
총소리를 들은 호텔 직원이 올라왔고 현장을 본 그들은 경찰에 신고
합니다.
멕시코 경찰은 성폭행 혐의에 대해 믿지 않았고 1965년 10월 유죄판결을
최종적으로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멕시코의 감옥에서 그녀는 라 피스톨레라 여성총잡이 라는
별명을 얻게 됐습니다.
1969년 12월 7일 놀라운일이 생깁니다.
샤론이 교도소의 일상인 출석에 나타나지 않았고 두번째 호출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이것은 경찰에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감옥에서 사라져 있었고 이후에 어디에서도 그녀의
소식을 듣거나 목격을 했다는 이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뉴스에는 샤론이 교도관들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것을 포함
그녀의 엄마가 탈출에 관여를했으며 전 멕시코 비밀 경호국 요원이 그녀를
도왔을 것이라고 추측 합니다.
조금더 현대적인 이론으로는 샤론에게 살해당한
프란시스코 파라데스 올도네즈의
가족이 그녀가 탈출하는 것을 돕고나서 그의 복수를하기 위해
그녀를 죽였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잘 탈출하여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전 그녀가 사망했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성격상 일을 자꾸..
일부러는 아니지만 일을 자꾸 벌이는 사람인것 같은데 지금까지
전혀 소식이 없다는걸 보면 말입니다.
여전히 영장의 기한이 여전한 라 피스톨레라 샤론 엘리자베스 킨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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