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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호러 하우스

제프리 다머의 그닥 주목 받지 않은 이야기


제프리다머 라고하면 범죄 사건을 흥미로워 하시는 분들이라면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는 1978년 ~1991년 까지 17명의 남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연쇄 살인마로 1994년 동료 수감자에의해 사망 했습니다. 


전에 영상을 다룬바가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실들에 대해 

짧은 영상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1960년 5월 21일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라이오넬과 조이스 다머의 

사이에서 태어 납니다. 

제프리는 부모님의 말에 따르면 4세 이전까지는 굉장히 행복한 

아이로 자랐다고 합니다. 

그는 탈장 교정 수술을 두번 받았는데 이 수술을 받으며 변하게 

됐다고 그의 가족이 말 했습니다.


같은 시기 그의 동생이 태어나며 가족은 여러번 이사를 다녔는데 

그러며 행복했던 시절의 아이는 점점 사라져 갔습니다. 

회고록에 의하면 몇몇 전문가들은 다머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받지 

못했을 가능성 또한 있다고 합니다.

 

어린 제프리는 동물 뼈에 빠져 있었는데 과학자 아버지가 그에게 

가르침을 주곤 했습니다. 

그는 뼈들을 모으고 닭뼈를 표백제에 넣으면 무슨 작용이 일어나는지 

화학자 아버지에 질문하고 했는데 그게 열살의 나이였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수술 이후 염려스러웠던 아들이 과학에 관심이 생겼다고

 믿으며 표백제를  사용해 동물의 뼈를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며 행복해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기대완 다르게 이 방법은 나중에 제프리 

다머가 끔찍한 방법으로 사용합니다. 


제프리 다머는 자신이 14세에 살인에 대한 강박이 시작 됐다고 하지만 

그의 부모님들의 이혼이 그의 잔악성에 눈을 뜨게 하는 것에 촉매제가 

됐을수도 있습니다. 


이건 널리 알려진 사실 입니다만 제프리 다머는 술을 달고 살았는데 

고등학생때부터 시작된 알콜 홀릭은 그를 알콜중독 환자로 만듭니다. 

친구들과 그는 주류를 밀입국 시켜 자신의 사물함에 보관했습니다. 

그런 술에 매달리는 성격에도 그는 주변에서 조용하고 차분한 학생으로 

인식되었고 테니스도 치고 일년 동안은 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합니다. 


미 육군에서 위생병으로 1979~1981까지 있었지만 알콜중독으로 인해 

퇴임하게 됐습니다. 


제프리 다머는 할머니 집에서 함께 살며 그곳에서 네명을 살해하고

 시신을 보관 합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밤 늦게 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것도 지하실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에도 질렸기에 집을 나가라고 부탁 했습니다.

 

그는 이후 할머니 집에서 나왔고 혼자 사는 2년 동안 희생자의 

수가 17명이 됩니다.

 제프리는 살아있는 희생자들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는 그곳에 염산을

주입하기도 했습니다. 

주로 취약계층 히치하이킹을 하는 이들을 희생자들로 삼아 경찰에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노력 합니다 .


1991년 5월 27일 제프리 다머의 이웃인 산드라는 경찰에 연락해 

아시아 소년이 벌거벗은채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신고 했습니다.

 

경찰이 도착해 소년을 확인했고 그들은 상황 정리를 한 뒤

놀랍게도 소년을 다시 제프리에게로 인도 합니다.


제프리는 경찰에게 그가 19세이며 자신의 연인이라고 그들에게 

설명했고 경찰은 그의 말을 믿었습니다 .

그러나 실제로 소년은 14세 였다고 합니다. 

경찰이 현장을 떠나고 제프리는 소년을 살해 했고 의식을 행했습니다.



제프리의 영화 취향은 그의 살인에서 보이듯 악마에 관련된 영화 

그중에서도 엑소시스트 영화를 좋아했는데 그에게서 도망쳤던 희생자가

경찰을 데리고 그의 집에 들이 닥쳤을때 역시 엑소시스트 3이 틀어진

상태 였다고 합니다.


그는 만약 자신이 6개월 후에 체포 됐더라면 경찰들이 희생자들의 

두개골로 만든 제단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곳은 아마도 집 처럼 편한 장소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고합니다.


제프리의 희생자들 대다수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기에 인종간의 

문제가 될 것이 염려 됐고 사람들과 분리 된 방탄 유리 장벽을 세워

그를 보호 조치 합니다. 


처음에 그는 심문에서 살인을 자백했음에도 나중에 모든 혐의대헤 

무죄를 주장했지만 결국 정신 이상 때문에 유죄로 변질 되었습니다. 

그의 변호인은 그가 희생자들에게 한 자세한 사항을 말했는데 

이는 제정신이 아닌 미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이라는 증거 

라고 주장 합니다. 

1992년 2월15일 약 10시간의 심의를 걸쳐 그는 15년 연속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감옥에서 다른 수감자들과 떨어져 지냈지만 당국이 

다른 수감자들과 더 어울릴 수 있도록 설득 했다고 합니다. 


그는 감옥에서 수감되어 있는 동안 아버지가 보낸 책과 사진의 형태로 

종교를 알게 됐고  1994년 5월에 절실한 기독교인이 

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프리 다머의 아버지 라이오넬 다머는 책을 썼는데 이것은 

아들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교육 방침이 어떻게 잘못됐는지가 

담긴 책이었습니다.

 

1994년 11월 28일 제프리 다머는 작업장에 배정되었고 또 다른 

살인자들인 제시 앤더슨 과 크리스토퍼 스카버와 함께 일하게 됩니다.

 

교도관들은 그들이 일을하게 두고 자리를 비우는데 다시 돌아왔을땐

제프리 다머와 제시 앤더슨이 피범벅이 된 상태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 스카버가 쇠막대를 구해 두 사람을 구타한 것 입니다. 

그로부터 1시간 후 제프리 다머에게 사망 선고가 내려 졌습니다. 


17명을 살해한 제프리 다머는 또 다른 살인마에게 그렇게 살해를 당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제프리 다머가 살인을 저질렀던 집은 3개의 침실과 3개의 

욕실이 있으며 나무가 우거진 공기가 맑은 지역에 위치하여 있습니다. 


이곳은 2005년 12월 더 웨이트리시스의 밴드 창립자 크리스 버틀러에게 

이십사만사천오백 달러에 판매가 됐다고 합니다 .


예술가라서 일반인들과 다른 사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라면 그곳에서

잠시 서있는 것 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칠 것 같습니다. 


너무나 잔혹한  살해 방법과 가끔 희생자들을 먹기도 했던 식인 연쇄

살인마 제프리 다머의 몇가지 이야기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