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종탑의 악마라고 불리운 사내가 있습니다.
시어도어 헨리 듀란트 그는 1871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윌리암 듀란트와
이사벨라 에게서 태어 났습니다.
이들 부부는 187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을 갑니다.
듀란트의 여동생은 나중에 이름을 바꾸고 여배우가 됐습니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을 당시 헨리는 8세의 나이였는데
그는 어린 나이에도 조울증 현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듀란트는 훈남에 게다가 백인 그리고 의과 대학에 재학 중인 23세의 의대생
이었으며 1번가의 엠마누엘 침례 교회의 일원이었기에 사람들의 신뢰를
받고 있었답니다.
이미지가 좋은 헨리에게 이상한 소문이 매춘부들 사이에서 돌게 되는데
시어도어라는 사내가 성관계 중에 새를 죽이고 그 피를 몸에 퍼트리는걸
즐긴다고 소문이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다니는 젊은 여성들과도 많은 염문이 있었으며 일부의
여성들에게 민망한 제안들을 했습니다.
여성들은 아버지나 형제들이 헨리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밀에 붙였습니다.
1895년4월 3일 오후 2시 정류소에서 블랑쉬 라몬트라는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스무살의 어여쁜 여성으로 이모와 함께 살기위해 최근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한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이사오기 전에 몬태나의 학교에서 선생님을 지냈는데
약간 병약했던듯 합니다.
블랑쉬의 가족은 그녀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건강이 좋아지길 기대하며
그녀를 이모 곁으로 보냈습니다.
블랑쉬는 이사온 동네에 적응하며 엠마누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헨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연애를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
했습니다.
블랑쉬의 운명의 날 헨리에겐 불운하게도 둘을 목격한 사람들이 수십명이
됩니다.
그날 블랑쉬와 헨리는 전차를 함께 타고 있었으며 헨리는 블랑쉬의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이며 그녀의 장갑낀 손을 가지고 장난을 쳤습니다.
이후 그들은 21번가에서 함께 내립니다.
교회의 건너편에 살고있는 한 사람은 그 커플이 교회에 함께 들어가는 것을
목격 했습니다.
오후 5시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인 조지 킹은 계단에 넘어져 있는 헨리를
발견 합니다.
그는 창백했고 떨고 있었는데 헨리는 조지 킹에게 가스가 누출 됐으며
치명적일만큼 흡인했으니 약을 사다다달라고 요청 했습니다.
그러나 킹은 나중에 이 사건을 생각할때 가스 냄새를 전혀 맡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 합니다.
이모는 저녁 기도회에가기 위해 교회를 갔고 블랑쉬를 그곳에서
찾았지만 그녀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블랑쉬가 보이지 않자 걱정을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헨리가 그녀에게
다가와 블랑쉬에대해 질문 합니다.
그러며 교회에서 블랑쉬를 볼 수 없는 것을 매우 아쉬워하는데 그런 그에게
이모는 블랑쉬가 매춘 업자들에게 끌려간 것일 수도 있다고 염려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헨리는 샌프란시스코 텐더로인 구역에서 여성의 반지를
저당 잡히려고 했습니다.
같은 날 오후 블랑쉬의 이모는 조지 킹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블랑쉬의 반지가 들어있는 소포를 받게 됩니다.
이모는 블랑쉬의 실종 4일만에 경찰에 신고 했습니다.
경찰의 조사에서 헨리가 그녀를 본 마지막 목격자인 것을 발견하였고
교회의 젊은 여성으로부터 헨리가 교회에서 자신의 벗은 몸을 보인 전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를 심문해도 그녀와 연관되는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실종자 명단에 남게 됩니다.
이 시기 헨리는 엠마누엘 교회의 또 다른 신자인 21세의 미니 플로라
윌리엄스를 눈독들이고 있었습니다.
블랑쉬가 사라진지 9일이 지난 1895년 4월 12일 미니가 헨리와 걷고
있는 것을 보겔이 목격 합니다.
오후 7시 그는 교회 원로들 모임에 가던 중으로 미니와 헨리는 교회 앞에서
무언가 열정적으로 대화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이 대화는 얼마나 심각했던지 지나가는 행인이 멈춰 그들을 말리기까지
했답니다.
나중에 증언을한 행인은 헨리가 신사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으며 조금 진정
된 후에 둘이 함께 교회로 들어갔다고 전했습니다.
4월13일 토요일 그날은 다음 날 부활절을 위해 교회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여성들이 나와 교회를 장식하기도 하며 꾸미던 중 한 여성이
컵을 가지러 캐비닛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캐비닛의 문을 열었을때 그 안에서 죽은 여성의 훼손된
몸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그 시신이 미니인 것으로 확인 했습니다.
미니는 부엌 칼로 여섯 번을 찔리고 속옷은 그녀의 입안에 밀어 넣어져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한 상태로 목졸려 살해 당했습니다.
부검 결과 그녀는 사망 전후에 강간을 당했습니다.
경찰은 수사를 진행하며 교회의 종탑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억났고
그곳에서 블랑쉬 라몬트의 시신을 찾게 됩니다.
처음 경찰이 그녀를 발견했을때 하얀 그녀가 마치 조각상 처럼 포즈를
취하고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 했습니다.
그녀는 올 누드로 심각하게 절단된 상태 였으며 두개의 나무 판자
사이에 머리가 끼어 있었고
그들이 시신을 따뜻한 곳으로 옮겼을때 그녀의 시신이 검게 변했다고 합니다.
경찰들은 두 여성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목격된 시어도어 헨리 듀런트를
수사하기 시작 합니다.
헨리는 부활절인 다음날에 체포 되었고 블랑쉬와 미니의 살인 혐의로
기소 됐습니다.
헨리의 사건 재판은 미국의 전역 주요 신문사들에의해 보도 됩니다.
검찰은 헨리가 미치광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헨리는
블랑쉬의 옷과 보석을 벗겨내고 시신은 사람들이 떠돌이라고 생각하길
바랬다고 합니다.
그녀가 차고 있던 반지는 독특한 디자인의 다이아몬드 반지로 전당포에
가져가 그것을 팔려고 했지만 다이아몬드가 너무 작아 가치가 없었다고
합니다.
재판에서 지킬앤 하이드 박사가 거론되며 헨리와 비교 되었습니다.
그의 변호사는 헨리의 옷에 피가 묻어있지 않다는 것을 언급하며 교회
목사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노력했지만 헨리는 유죄를 받고 교수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헨리는 살인을 자백한 적도 없고 자신을 무죄라고 변론하지도 않았으며
1898년 1월7일 산 쿠엔틴 교도소에서 사형됩니다.
그는 스테이크,달걀,햄과 토스트를 아침 식사로 마치고 교수실로
향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군중들이 그가 말하지 않았던 동기 혹은 자백 혹은 무죄
라고 주장하는 것을 듣고 싶어했지만 그는 결단코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군중은 실망합니다.
시어도어 헨리 듀란트의 어머니는 단 한번도 아들이 살인범이라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교수형후 시신은 옮겨졌고 헨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의 얼굴에 키스하며
작별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화장터를 찾는 동안 아내는 오두막집에서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그녀의 아들의 시신과 이야기하는데에 보냈습니다.
1월 13일 겨우 겨우 화장터를 구해 헨리의 시신을 화장 합니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교회는 사람들이 태워버리라고 항의를 했습니다만
교회는 그것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저주라도 걸린 것인지 한 목사는 자살하고 한 목사는 성 추문이
일어 났으며 또 다른 목사는 데일리 드라마틱 크로니클 신문을 창설한
편집장인 샤를 드 영을 살해 했습니다.
결국 1915년 엠마뉴엘 교회는 파괴 됩니다.
현재 그곳은 예전에 끔찍한 살인이 있었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 처럼
예쁜 집들이 지어져 있습니다.
종탑의 악마 종탑의 괴물은 이렇게 항소로 시간을 끌어가다 결국 사형을
받았고 그런 살인마라도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인지 부모들은 마지막까지
아들을 보듬었던 사건이었습니다.
'미스테리 호러 하우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억울함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0) | 2018.10.02 |
---|---|
참으로 사건 사고가 많았던 남자 (0) | 2018.09.28 |
제프리 다머의 그닥 주목 받지 않은 이야기 (0) | 2018.09.21 |
저희 집 강아지 좀 찾아주세요~! 사라진 앤디 ! (0) | 2018.09.18 |
차이나 잭 더 리퍼 (0) | 2018.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