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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호러 하우스

그가 직접 제작한 레시피 북


데이비드 폴 브라운에서 나다니엘 바 - 조나로 이름을 바꾼 그는 

 1957년 매사추세츠의 우스터에서 태어 납니다. 


그는 어릴적부터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

그가 7세 였을때 그의 생일 선물로 위자보드를 받았으니 같이 해보자며

이웃 집의 5세 소녀를 집 지하실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돌변하여 소녀의 목을 조르기 시작 했고 소녀가 놀라 지른 비명에

나다니엘의 어머니가 달려와 아이는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일곱살일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일은 이대로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순진함을 비웃기라도하듯 나다니엘은 1970년 또 다른

시도를 했고 이번엔 나쁜 결과가 현실로 일어납니다. 

이웃의 6세 소년에게 다가간 그는 썰매를 함께 타자며 설득했고 사람들이

없는 외진 곳으로 데리고가 강제로 몹쓸 짓을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나이 13세일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발판으로 좀 더 계획성있게 다가가야 하는 것에 눈떳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때 경찰 옷을 입고 8세 소년을 체포해 

차에  납치해 강제로 취하고 목졸라 살해 하려합니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이것을 목격한 이웃 사람이 폭행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경찰에 신고 했고 소년은 거의 죽기 직전에 구조 됐습니다. 


나다니엘은 체포되었고 고작 집행유예 선고를 받게 됩니다. 

좀 조용해졌나 싶었으나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자신의 형량이 

여전히 남아있을때 다시한번 경찰로 위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9세 소녀를 납치하여 몹쓸짓을 하고 목을 조르는데 소녀가 

구토를 하기 시작하자 그녀를 내쫓았고 이 차는 목격자에의해 번호가

기록 됩니다. 


번호는 경찰에 넘겨졌고 그가 체포가 됐지만 얼토당토 않고 어이없게도

이 체포 기록이 그의 집행유예 담당자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그의 집행

유예기간이 1976년 5월에 풀리게 됐습니다. 


1977년 9월 24일 나다니엘은 경찰에서 업그레이드하여 이번엔 FBI로

위장합니다. 

그리고 영화관에서 나오는 두 소년들을 납치 했습니다. 

소년들에겐 수갑이 채워졌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을 외딴 

지역으로 끌고 갑니다. 

차 트렁크에 있던 두 소년들을 내려 놓고 괴롭히기 시작 합니다 

그리고 그는 아이들 중 한명을 살해하기 시작 하였고 소년은 곧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다니엘은  소년이 죽은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년은 그가 자신이 죽었다고 믿게끔 계속 죽은 척을 했고 

나다니엘이 담배꽁초를 얼굴에 비벼 끌때 역시 그 행동은 이루어

졌습니다. 

그렇게 소년들이 다 죽었다고 생각한 나다니엘은 자리를 떠났고 

살아 남은 소년이 도망쳐 경찰에 신고 합니다. 


소년 덕분에 나다니엘이 경찰에  체포 될 당시 납치됐던 다른 소년은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손에 수갑이 연결된 채로 말입니다.


그는  살인 미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18~22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가지만  교도소 정신과의사와의 상담에서 

지속적으로 살인과 해부 식인등의 묘사를 이야기 했고 

 의사는 그를 정신병원으로 옮기도록 권고 합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유대인들이 경험한 박해와 고통을 이해하고 

존경하고 싶다며 자신의 

이름을 나다니엘 벤자민 레비 바 조나 로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를 1991년 심리 평가에 동의한

판사가 나다니엘이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 그가 어머니와 함께 

살도록 판결 합니다.


판사의 판결은 물론 실수 였습니다. 

그는 풀려나 한달이 됐을때 매사추세츠 옥스포드에 있는 우체국

주차장에 혼자 차에 앉아 있는 7세 소년을 보고 차로 향해 

목졸라 살해 하려고 했지만 그를 목격한 사람때문에 도망 칩니다. 

그러나 그를 15년 전에 체포했었던 경찰에의해 다시 체포 됐습니다.

 

나다니엘은 경찰에게 비가 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차를 탔고 

운전자가 오면 자신을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하기 위해 기다렸을 뿐이라고

억지 주장을 합니다. 


소년의 경우는 거기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일어난 부상이었다고 

했지만 나중엔 그도 자신의 주장이 억지였다고 생각 됐는지 소년을

살해 하려 했다는 의도를 인정 했습니다. 


이로인해 그는 어머니와 함께 몬태나 주 그레이트 폴스로 이사를

가야한다는 조건과 2년간의 보호관찰이 내려집니다 


그레이트 폴스로 넘어간 나다니엘은 그곳에서 스타워즈 관련

장난감들을 모으기 시작 했고 이것을 마당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팔기 시작 했습니다. 


1993년 12월 나름 얌전하게 지내던 그가 8세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나다니엘은 만약 자신이 진짜로 그런 짓을 했다면 그 소년을

살해 했을 것이라고 자신을 변호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변호사가 나다니엘의 권리가 침해 됐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은

기각 됩니다. 


1996년 2월10일 10세 자크 램지라는 소년이 등교하던 도중에 

사라지는 일이 일어 났습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오프화이트 차량을 보았다고 합니다. 

또 아이가 사라지고 전 후로 비만인 사람이 따라 다닌 것으로 

조사 됐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는 FBI가 작성한 그 지역 성범죄자 목록을

살펴보다 등록되지 않은 나다니엘에 시선을 옮깁니다. 


그들은 나다니엘과 어머니가 함께 사는 집에 찾아가지만 수색을 

거절하여 들어갈수 없었고 수색영장을 신청하지만 그 역시도 거절 

당했습니다. 


형사는 나중에 나다니엘이 어머니의 차인 오프화이트 토요타 자동차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사건 당일날 그가 경찰관과 비슷한

어두운 파란색 재킷을 입었으며 램지가 사라지기 며칠 전에 램지의

이름을 자신의 지인에게  언급했다는 사실 또한 알아 냅니다. 

형사는 다시한번 수색영장을 신청하지만 역시나 거절 당합니다. 


얼마 후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혼자 살기 위해 

이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사건은 해결되지 않은채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그는 아파트에 살며 근처에 사는 소년들을 집으로 초대해 몹쓸짓을

했으며 천장에 설치한 도르래를 사용해  매달아 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이러한 사건은 오랫동안 들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의구심을 느끼는 부모가 있었는데 나다니엘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자녀가 갑자기 내성적이되고 화를 자주냈기에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뿐 자신의 자녀들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에대한 의심은하지 

못합니다.  

또 그가 살인자일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 했습니다. 


1999년 12월 13일 나다니엘은 초등학교 근처에서 세번 목격되며 

체포 됩니다. 

그는 청색 재킷과 니트 모자 그리고 손에는 후추 스프레이 캔을 

들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경찰을 사칭한 죄로 잡혔지만 그의 집을 수색하며 

심각함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의 집에는 잡지에서 잘라낸 3500 장의 어린이들의 사진

자크 램지의 실종에 관련된 뉴스 기사들의 스크랩 

 자신만의 코드로 적힌 일지들 또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뼈들이 발견 됐습니다. 


경찰들은 바로 자크 램지의 실종이 그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을 하며 수색했고 이웃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며 성폭력 혐의까지 함께 포함되어 기소 됩니다. 


FBI는 그의 일지를 해독 했습니다. 

고문과 살인에 대한 그의 집착에대한 묘사와 22개의 이름 목록이

있었고 그 중 8명은 그의 희생자들로 판단 됩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것은 아이들에 관한 요리법이었습니다. 

꼬마 소년 냄비 파이 , 튀긴 꼬마 , 어린 소년 스튜 등의  레시피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경찰은 이것들이 실제로 사용되어 나다니엘이 주변 인물들에게 먹였을

것이라고 추측 합니다. 

그리고 그 추측은 사실로 밝혀지는데 자크 램지가 사라지고나서 

요리회라는 것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상한 맛이 나는 고기를 대접하며 자신이 사냥해서 잡고 죽이고 

도축하고 포장했다고 직접 말하는것을 이웃들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다니엘은 총기 사용 면허증이 없으며 램지가 실종되고 

한달 동안 그의 신용카드 내역서에는 식료품을 산 흔적또한 

없었습니다. 

물론 나다니엘은 현금을 사용했다고 주장합니다. 


나다니엘의 전 룸메이트는 램지의 옷과 비슷한 피 묻은 장갑과

더러운 남자아이의 옷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그의 고기 다지는 기계에서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을 발견 했으며 8~13세 사이의 소년의 뼈 조각 21개를 

발견 합니다. 

그 집의 파이프는 나중에 이사온 이웃들이 자꾸 막히자 교체해버렸기

때문에 증거를 찾기란 불가능 했습니다.  


머리카락과 뼈에서 나온 DNA로 확인한 결과 그것은 램지의 것이 

아닌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의 것으로 확인 됩니다. 


램지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으며 나중엔 아들의

살인으로  나다니엘이 재판을 받게 된다면 그를 변호하겠다고 

경찰을 위협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경찰은 램지의 실종 사건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의

살인에대해 초점을 맞춰 시작 합니다. 


수색을하던 이들은 집의 합판부분에 얼룩진 부분을 발견했고 

그곳에 루미놀 테스트 결과 티타 라는 단어가 적혔었다는

사실을 알아 냅니다. 

이것은 1973년 뉴햄프셔 주에서 끔찍한 일을 당하고 목 졸려 

살해당한 15세 소년 제임스 테타와 임시로 연결 됐습니다. 


그의 일기장에 기록된 이름 목록중 두명은 그의 이웃에 살던 소년들로

한명은 야유회에서 그가 강제로 추행을한 것을 인정 했지만

 한명은 그가 자신의 친구라며 자신에게 해를끼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편을 들어주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성폭력, 가중 유괴,

치명적인 무기로 행한 폭행죄로 기속 됐으며 가석방 가능성 없이 

2002년에 유죄 판결을 받아 130년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렇게 선고받고 감옥에서 생활한지 얼마지나지 않아 2008년 4월

13일 그는 비만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한채 발견 됩니다. 


그가 그렇게 사망하고 3년후 자크 램지의 어머니는 법적으로 

사망 선고를 했습니다. 


그가 살인미수로 잡혔을 적에 그를 풀어주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성범죄자들이 어설픈 형량으로 갱생이 가능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외국처럼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가벼운 형량으로 풀어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입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른만큼 큰 형벌을 받고 사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한번 생각이 들게했던 나다니엘 바 -조나

사건이었습니다.